▲이성우
민주노총 대전본부 사회공공성강화위원장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이 어느새 보름이 지나 장기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투쟁의 발단은 현대차의 사내하청 ‘동성기업’이 폐업하고 ‘청문기업’이 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탈퇴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29명의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고 현대차에게 직접 고용을 촉구하면서 점거농성을 시작하자 수백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세하면서 현대차 1공장의 가동이 전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비정규직 노조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현대차는 법적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면서 직접 고용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무엇인가.
지난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정상적인 도급계약이 아니라 불법파견이며, 따라서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현대차를 비롯한 제조업에서는 사내하청이라는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활용해왔다. 노동자들은 하청업체에 고용돼 있지만 현대차와 같은 원청회사의 작업장에서, 원청회사의 설비에 투입되어, 원청회사가 정한 업무지시(작업방식, 작업시간, 작업속도)에 따라 사실상 정규직 노동자와 별다른 차이 없이 일해 왔다. 현대차는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사내하청이라는 방식은 도급이 아니라 파견(불법파견)이라고 일축한 것이다.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대법원조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하게 된 것은 더 이상 불법적인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8년 초에 IMF 환란 극복을 빌미로 파견법이 제정된 이래 간접고용이 일상화되면서 최근 어떤 통계에 따르면 간접고용노동자들이 약 55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전체 노동자 1600만명의 약 34%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이 짧게는 3개월, 길어야 1년 단위의 초단기 불법파견 일자리를 전전하는 ‘고용난민’의 신세로 전락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크워크와 민주노총이 지난 5월에 진행했던 실태조사를 보면, 간접고용 노동자는 60% 가까이가 원청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고 있고, 주당 평균 48.7시간을 일하며, 절반이 15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
대전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롯데백화점 대전점에서 일하던 시설관리노동자 24명이 지난 10월 31일에 일방적으로 해고(계약만료통보)당했다. 사전에 아무런 통보나 조치도 없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24명의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는 엠서비스와 여기에 용역을 맡기고 있는 원청 사업자 롯데백화점은 용역계약이 10월말로 끝났기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롯데백화점이 대전에 입주한 이래 10여년을 묵묵히 일했던 노동자들을 하루 아침에 해고한 까닭은 노동조합 가입에 따른 보복조치라는 정황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자 엠서비스는 노조 대표자에게 ‘소장’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고, 노조 간부들에게 ‘갈비세트’와 ‘과일세트’를 보내어 회유하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작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엠서비스는 조합원들을 해고하였고, 자기들하고 무관하다고 발뺌하던 롯데백화점은 해고통보 직전에 백화점 주변에 한달간 집회 신고를 내서 실질적 사용자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 롯데백화점 대전점 집단해고 등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간접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기본권이 1987년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중간착취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여 간접고용노동자들을 더욱 늘이겠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아서라. 모름지기 G20 의장국이라면서 어찌 벼룩의 간을 빼먹으려 한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