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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의 선택, 민노당의 선택
-진보정치 발전을 위한 “두 날개 체제”를 제안하며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08년 7월 10일
2강 구도의 민노당 최고위원 선거
두 달 넘게 전개되어왔던 촛불정국의 새로운 방향설정이 주목되는 가운데,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최근 지도부 구성을 차례차례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민노당의 선택이다. 7월 13일부터 시작되는 민노당 최고위원 선거는 일단 현재로서는 이수호-강기갑 2강구도가 전망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수호 당대표+강기갑 원내대표>라는 “두 날개 체제”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제안을 하고 싶다. 지금 민노당이 처한 상황과 자산의 적극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정치적 부담은 최소화하고 역량은 극대화할 수 있는 선택”이란 이것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수호 당대표+강기갑 원내대표>의 두 날개 체제
물론 이는 선거에서 당원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겠지만, 민노당의 진로는 다만 민노당의 문제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이 나라 진보정치의 발전에 기대를 거는 모든 이들의 관심과 희망이 걸려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당원이 아닐지라도 이에 대해 발언하고 제안하는 것은 진보정치 전체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행위에 속한다고 믿는다.
다음의 비판과 제안들은, 거론되는 개별적 인사에 대한 호감, 불호감의 차원이 아니라 진보정치 전체의 발전적 미래를 바라는 입장에서 차분하고 냉정하게 검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강기갑 의원의 최고위원 출마는 사실상 당대표를 겨냥하는 것이다. 국민적 인기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그가 원내대표에 이어 당대표까지 겸하게 된다면 민노당의 위상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가 여기에 담겨 있다. 민노당으로서도 사천에서의 선거승리에 이어 촛불정국에서 정치적 스타로 떠오른 강기갑 의원이 당의 얼굴이 된다는 것은 매력적인 선택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겸직의 정치적 부담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바가 적지 않다. 우선 당대표가 원내대표를 겸직할 때, 다른 당과의 관계에서 위상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다른 당은 민노당의 당대표를 직접 상대하는 것에 반해 민노당은 일단 원내에서 일차적으로 다른 당의 원내대표를 상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갈등이 복잡한 단계에 들어섰을 때, 민노당의 정치적 유연성은 훼손되거나 상실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 대표의 입장표명은 대체로 최종적인 반면에 원내대표의 입장과 견해는 그 당의 최종적 견해가 아닐 수 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역할 분담이 있을 경우 당대표가 사사건건 모든 현안에 나서지 않아도 총체적으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나 완충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내대표가 당대표를 겸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되기 쉽다. 원내 전략상 물러설 수밖에 없을 때 당대표가 물러서는 것과 원내대표가 물러서는 것은 그 차원이 달라진다. 그렇지 않아도 소수정당인 민노당은 이런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다.
더욱이 현재 민노당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역량으로 보았을 때 원내대표에게 당대표까지 포함한 역할과 위상이 집중 독점되는 것은 위태로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앞에서 거론했듯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펼쳐나갈 원내전략의 정치적 유연성에 요구되는 공간을 스스로 좁히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사천 갯벌 매립 동의서명한 강기갑 의원, 평소 소신과 배치된 결정 안타까워
그렇지 않아도 최근 사천 광포만 매립 건에 대해 강기갑 의원이 당 강령과는 배치되는 매립 동의서명을 해버린 경우는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한 사람에게 독점되어 있을 때, 민노당 전체에 어떤 어려움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다.
강기갑 의원은 갯벌매립이 자신의 평소 소신과는 다르지만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서명행위를 해명했으나 민노당은 공식적인 당 성명을 통해 당 강령 위배사안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실로 안타까운 사건이다.
갯벌보존과 관련한 당 강령을 위반하고 지난 총선에서의 환경공약과도 배치되는 선택을 한 최고위원 후보에 대한 징계조치는 현실적으로 강기갑 의원이 가지고 있는 위상이나, 민노당 전체의 소중한 자산을 지켜내야 한다는 점에서도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민노당이 민노당 최대의 자산인 강기갑 의원을 일단 보호하려는 정서가 강했기 때문에 사안자체가 폭발력을 갖지 않도록 겉으로는 큰 파문이 없이 넘어가는 양상이다.
하지만, 환경운동단체를 비롯한 진보진영에서 이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하고 있는 현실은 민노당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사천 환경운동 연합>의 경우, 강기갑 의원에게 공개적인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습지보호구역지정으로 거론된 광포만 갯벌”에 “한번 제대로 와보기라도 했는가?”라고 질타하고 나섰다. 강기갑 의원 자신 스스로 새만금 매립도 반대했고, 지난 총선의 과정에서 한나라당 이방호 후보와도 이 문제를 놓고 각을 세웠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당 강령 위반 최고위원 후보에 대한 평가
만일 당대표로서 이러한 행위를 했을 경우, 민노당은 어떻게 대응하고 처신해야 할까? 지금 당대표도 아닌데 무슨 이야기인가 할 수 있겠지만, 당대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와 같은 처신을 해버리고 말았다는 점은 강기갑 의원 자신과 민노당 전체를 위해서도 냉철한 평가가 필요한 대목이다. 강기갑의원이 일부 지역구 주민들의 요구를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수 있으나, 당 강령 위반사태는 당의 정체성을 모범적으로 세워나가야 하는 최고위원 내지 당 대표 후보로서는 매우 중대한 실책 내지 과오로 비판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전체 의원 다섯 명 가운데 신참의원이 3명이 되는 상황에서 이들에 비해 경험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원내대표가 이들과 함께 강력한 원내전략에 몰두해야 하는 시기에, 당의 총괄적 지도까지 감당하려 든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기력을 소진시키고 원내, 원외 어느 쪽도 충분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태를 자초할 수 있다.
정치적 부담 최소화+역량 극대화 전략 필요
당과 원내에 풍부한 자원이 존재한다면 물론 이런 상태가 오지 않을 수도 있으나, 진보신당과의 분열 이후 감싸 안고 나가야 할 과제가 산적한 현실에서 원내외를 혼자서 아우르려는 것은 아무래도 힘겨운 일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치적 부담은 최소화하고 역량은 다원적 구조를 통해 극대화”하는 것이 택해야 할 지혜다.
강기갑 의원은 이미 정치적 스타가 되었다. 그런데 “민노당은 강기갑만 있나?”, 하는 국민적 인식도 이 시점에서 바꿀 필요가 있다. 강기갑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자원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 또한 민노당의 장래를 위해 너무나도 필요한 일이다. 진보신당에는 노회찬과 심상정이 있는데, 민노당은 강기갑 혼자 버티고 있는 정당이라는 식이 되는 것은 당 발전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중적 지지를 확대하는 작업에 다양한 정치럭 지도력이 나서는 것이 옳다.
강기갑, 강력한 기갑사단이자 돌파력 갖춘 송곳
강기갑 의원은 그 이름 그대로 강력한 기갑사단이다. 원내전략에서 “송곳” 같은 돌파력을 가지고 소수정당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가 있다. 여기에 힘을 모아 나가는 것이 이제 조만간 복원될 의회정치에서 그가 책임져야 할 역할이다. 그리고 이것이 강기갑 의원의 소중한 정치적 가치를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는, 현재로서 가능한 최선의 방식이다.
그러나 진보정치는 이번 촛불정국에서 보았듯이, 원내정치에만 매달릴 수 없다. 원외의 직접 민주주의 동력이 지속적으로 받쳐주고 그 외연이 확대되어야만 두 개의 전선에서 진보정치가 승리할 수 있다. 강기갑 의원과 함께 당 대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수호는 그런 점에서 보면 “투망”의 의미를 가진다. 강기갑이 날카롭게 찔러 전선을 밀고 나가면 이수호는 전후좌우에서 넓고 깊게 그물을 던져 진보정치의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수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민노당의 혁신-재창당을 주도해왔고, 진보진영의 새로운 결집에 전부를 걸고 있다. 민노당의 진보적 정체성의 원칙을 지켜내면서도 대중적 지지를 확대해나가는 것은 진보정치 전체의 당면한 과제다.
이수호, 넓고 깊게 그물을 던지는 투망
이번 최고위원 선거에서 강기갑 의원이 2등이 된다면 그것은 민노당의 절묘한 선택이 된다. 애초에 원내와 당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밝힌 강기갑 의원으로서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고 (원내외의 연결고리는 의원단과 최고위원단의 연석회의를 통해 해결할 방도도 있다.), 민노당으로서는 송곳과 투망 모두를 건지는 셈이니 든든해진다.
이것이 바로 두 날개 체제가 갖는 의미다. 그렇지 않아도 그 출신기반으로 볼 때 민노총의 이수호, 전농의 강기갑이 민노당의 중심축이 된다면 민노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적 기반은 그 정체성을 기본적으로 확보하는 셈이 된다. 거기에 진보진영 전체의 단결과 결집을 통해 민노당의 국민적 대중성이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앞으로 기대할 바가 크다. 진보정치에 기대를 걸고 있는 국민들이 요구하는 진보진영의 단결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즉 민노당과 진보신당과의 화학적 결속도 그런 토대 위에서 가능해진다.
새는 두 날개로 날지 않는가?
새는 두 날개로 난다. 그 새가 나는 방향이 진보정치의 집권이라면, 그 머리는 민노당을 비롯한 진보정치 전체의 역량 결집이다. 몸통은 당연히 국민이다. 이 새가 날기 위해 필요한 날개는 물론 두 개다. 강기갑의 뚝심과 돌파력, 그리고 이수호의 정치적 유연성과 포용력이 하나가 될 때 진보정치의 집은 크고 넉넉하게 지어질 것이다. 원내와 원외는 그렇게 해서 유기적인 통일체가 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집권은 지지자가 다수일 경우에만 이루어진다. 민노당이든 진보신당이든 단지 비판과 저항의 세력으로만 머물고자 하는가? 아니지 않는가? 하나의 날개로는 날 수 없고, 혼자서 다 할 수 없다. 합하여 선을 이루는 법이다.
사공이 많으면.......?!
작가 이외수가 얼마 전 방영된 KBS <인간극장>에서 했던 말이 내내 잊혀 지지 않는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의 뜻은?” 하는 초등학교 시험에, 어느 학생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힘을 합하는 사람이 많으면 안 되는 일 없다.” 엉뚱한 곳으로 배가 간다가 정답이라고만 생각하는 이에게는 이 답에 대한 평가는 뻔하다. 그 많은 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가만 서로 통하면 적은 수의 사공보다 낫다. 가는 길에 역할 분담하고, 또 가다 지치면 임무교대하면 된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기갑이도 있고 수호도 있는 민노당, 그래서 서로 등을 돌렸던 회찬이도 상정이도 언젠가는 이들과 하나가 되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진보의 다채로운 얼굴을 가진 집권의 함대가 맨 날 강가 주변에서만 맴돌지 말고, 이 나라 백성들의 고달픔을 진실로 덜기 위해 권력의 산 정상으로도 이젠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산꼭대기 위에 올라간 그 배에서 다들 내려, 보란 듯이 진보정치의 진정한 실력을 보여주는 날을 고대하고 또 고대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