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민주노총 사태에 대한 민주노총 법률원 성원들의 의견
이수호 위원장님께
민주노총 법률원의 성원들도 민주노총에서 상근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현 사태에 대한 저희들의 생각을 밝히고자 합니다. 강승규 수석 사건이 언론에 발표된 이후 법률원에서도 3차례 정도의 내부 회의를 가졌습니다. 사직으로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민주노총 각급 현장에서 조합원들의 대중적인 토론과 혁신의 촉매제가 되기를 희망했던 사무총국 15명 활동가들의 성명을 지지하면서 법률원 성원들의 생각을 전달하기로 의견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한 하청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한 잘못이라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그는 경비대의 감시에 시달려야 했고 사장으로부터 ‘너 때문에 업체가 폐업되게 생겼고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는다’고 1달 내내 불려다니면서 탈퇴를 요구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업체는 폐업되었고 그 하청노동자도 해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비대의 감시와 미행,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 왕따 노동자가 되어야 했던 그는 늘 감시에 대한 공포와 사람을 경계하는 불안증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을 얻고 말았고 아직 회복이 되지 못한 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까지 노동조합을 지켜려 하였을까요.
2003년 이후 배달호 열사, 이용석 열사, 이해남 열사, 김주익 열사, 박일수 열사.... 이젠 이름도 다 외우기 어려운 수의 노동자들이 죽음으로써 이 땅의 노동현실에 항거했습니다.
해고통지서, 경찰출석요구서, 채무내역, 신용회복지원 통보서를 마지막 유품으로 남기고 죽어간 한 열사의 고통은 이 땅 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한해 평균 200여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수조차 셀 수 없는 노동자들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또 거리에서 경찰의 방패와 군화에 짓밟혀 가면서 그들은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신병을 얻어가면서까지 죽음으로 항거하면서 또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지키고자 한 것은 바로 민주노조였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골리앗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전국의 노동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지긋지긋한 노동탄압과 비정규직 차별의 사슬을 끊어줄 것이라는 연대의 희망이었습니다.
바로 그 민주노조의 구심이자 민주노조의 상징이 바로 민주노총입니다. 연대의 희망을 일으켜 세워줄 노동자들의 자랑스런 조직이 바로 민주노총이 아닙니까.
그 노동자들의 투쟁이 너무나 정당한 것이었음을 역사에서 검증해 줄 그 중심에 민주노총과 지도부가 있기에 인간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각오하며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기에 죽어간 동지들도, 감옥을 가야 했던 동지들도 그 길은 뚜벅 뚜벅 걸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들도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미약한 힘이나마 함께 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의 조직혁신위원장이자 도덕성을 다시 세워야할 중책을 맡은 채용비리 대책위원장이었던 강승규 수석 부위원장이 사업주단체 대표로부터 8100만원의 돈을 받았고 그로 인해 구속기소되었습니다. 한 택시노동자가 2004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중단과 부가세 횡령중단과 환급을 요구하며 분신하였습니다. 그는 아직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강승규 수석 부위원장은 그 사용자의 대표로부터 돈을 받았고 택시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부가세로 자신의 배를 채운 그 사용자 대표로부터 돈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민주노총의 도덕성과 자주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중대한 사건입니다. 민주노총에 대한 믿음 하나로 투쟁의 대열에 나선 노동자들과 죽어간 열사들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안겨준 사건입니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확산시킬 것이 뻔한 비정규직법과 노동기본권을 억압하게 될 제도적 완결판인 노사관계 로드맵을 막아야 하는 큰 과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 사건으로 우린 반은 패배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자본은 마이너스 80점(－80)짜리 비정규법안을 들고 나왔고 우린 최대한 합리적인 선을 양보하여 100점에 미치지 못하는 ＋80점짜리 법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교섭에서 수십차례 대화가 오갔지만 정부와 자본의 법안은 여전히 －70점짜리이고 우리는 ＋65점짜리의 법안까지 양보하는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교섭에서 최대한 양보할 수 있는 선이 ＋60점까지라면 아직 140점이라는 간극이 벌어져 있습니다.
이 간극이 교섭으로 좁혀지기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방법은 노동자들의 들불같은 투쟁외에는 없음을 우린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강승규 수석 사건은 그 들불에 불씨마저 위태롭게 만들었고 그 불씨를 피워야할 역사적 책무를 지고 있는 민주노조의 구심, 민주노총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도부의 사퇴는 상식이기 이전에, 민주노조의 기풍이기 이전에 당연한 역사의 책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들불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아직 감옥과 유치장에 있는 노동자들과 경비대의 감시를 받아가면서 노동조합을 지켜내고 있는 노동자들과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권한은 조합원들에게 있고 조합원들로부터 나옵니다. 민주성을 상실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이 아닙니다. 사퇴로서 다시 조합원들에게 그 권한을 돌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성의 원칙입니다. 이것마저 훼손되어서는 안됩니다.
지도부 사퇴의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그 사퇴의 결단으로 다시 불씨을 살리는 출발점이 되어주시기를 그리고 현장에서 투쟁을 독려하는 백의종군으로 다시 평가받으시기를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사무총국 15명 활동가들의 사직 성명을 지지하면서 법률원의 성원들도 곧 그 뒤를 따르고자합니다.
2005. 10. 18.
권동희(공인노무사)
권두섭(변호사)
서상범(변호사)
손지영(법규차장)
송영섭(변호사)
안태윤(변호사)
양도연(공인노무사)
이승민(법규차장)
임세윤(법규차장)
정용택(법규차장)
정은혜(변호사)
가나다순 이상 1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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