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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사이에 대법원의 선고공판 결과 민주노동당의 조승수 의원만 의원직 상실이 확정된 것에 대해 이는 문제가 있는 것임을 지적하는 글들이 여기저기 많이 올라왔다. 민주노동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한 것은 물론 포털 사이트들에서도 긴급설문조사를 하여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지지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마 단일한 사건에 대해 민주노동당 내외에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끈 사안은 지난 2004년 총선 때를 제외하고 없었을 것이다.
무작정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이번 대법원 판결의 함의는 무엇이고, 민주노동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광호 전 <진보정치> 편집위원장이 프레시안의 기고글("사마귀 한 마리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막은들…")에서 쓴 것처럼,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보수정당에 관한 한 형평성을 유지했고, 단지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만 가혹한 판단을 내렸다. 민주노동당은 29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판결이 "대법원 스스로가 보수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지만, 언제는 진보적인 적이 있었는가? 그들은 철저하게 보수적이고 계급적이었고, 이번 판결은 자신들의 본질을 그대로 폭로한 것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유권자에게 금품향응을 제공한 것에 대해서는 파기 환송하였으면서, 정책소신 선거를 펼친 것에 대해서는 의원직 박탈형을 선고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금품을 제공하거나 불법선거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선거운동 개시 전날 음식물 자원화 시설과 관련하여 지역 선관위가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정책적 의견을 밝힌 것인데, 그게 선거법 위반이란 말인가? 참여연대가 29일 성명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는 "지역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이라는,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으며, "이 점에서 조 의원과 같은 사례는 다른 국회의원들의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29일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의 상식 이하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울산시민은 물론 국민이 심판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대법원 규탄 집회 몇 차례와 함께, 10월26일 치러질 울산북구 재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승리하는 것말고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여 '또 다른 조승수'를 배출하면 정의가 살아있음이 입증되는가? 재선거에서 충분한 지지를 받는다면 "조승수가 어떤 활동을 해 왔나, 민주노동당이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나 하는 것"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논리는 금품향응 제공,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고도 지역주의에 편승하여 다시 자당의 후보를 당선시키면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보수정당의 논리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는 이번 판결에서 근본적인 것들을 지적해야 한다. 바로 그것은 사법부의 민주화와 민중에 의한 통제이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정치활동을 너무 편하게 해왔다. 단지 폭력과 강압에 의한 것만이 탄압이 아님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찌 보면 이러한 구조적ㆍ제도적 요인에 의한 탄압이야말로 다시한번 소수 진보정당으로서의 위치를 살필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야당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구조와 제도를 바꾸어내는 것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핵심원리를 대중의 참여, 대표, 책임의 원리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법부는 과연 이런 민주주의의 원리로부터 얼마나 접근해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들은 민주주의 관점에서 사법부를 이야기할 때 사법의 '독립'에 주된 관심을 쏟았다. 그 결과 재판에서 외부적 간섭, 특히 권력기관의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 또한 사법의 독립이 일반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면, 이는 사법부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 외압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남아 있는 문제는 사법권의 민주적 정당성이다. 사법작용이 가진 전문성과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민주권의 원리에 비추어 보아 입법부나 행정부보다 사법부가 민중의 직접적 의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입법부를 사법부보다 더 높게 보는 이유는 입법부에는 바로 민중의 권력의지가 반영되어 있고,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이 의회 연단에서 민중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그 통로가 상대적으로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으로 선발된 사법부 엘리트들에게는 민중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개인적인 소신을 가진 몇몇 판사들의 움직임이 있지만, 단발마로 그칠 뿐이었다.
굳이 이번 판결뿐만 아니라 작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에 대한 위헌판결이나 헌법 개정 논란,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에서 대법원의 국보법 페지론에 대한 정면비판, 그리고 미술교사인 김인규 님의 작품에 대한 대법원의 음란물 판정 등에서 나타났듯이, 사법부의 위상에서 보면 그 판결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해 우리는 너무 둔감했던 듯하다. 이제 사법부가 어떤 가치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는지, 얼마나 민주주의의 가치나 '사회적 평균인'의 상식을 지키고 옹호하는지를 중요한 문제로 인식해야 할 때이다. 사법부가 사유재산권 보호와 공공질서 유지 등을 들어 노동자ㆍ민중의 목소리는 보수적이고 계급적인 법의 칼날로 짓밟고, 이 땅의 사회적 소수자들의 외침은 외면해왔던 것을 더 이상 두고봐서는 안된다. 최장집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하나의 법과 그 평결이 민주적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형식적 절차적 정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 원리에 부응하는 내용적이고 실질적인 정당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고전적 자유주의 하에서 권력분립이 제기되었으나, 지금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운운하면서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의 긴장보다는 상호간의 통합이 더 강조된다. 그리하여 그 대립점을 형성하는 것은 각 계의 상층부에 위치한 엘리트 권력과 그 반대편의 노동자ㆍ민중이 되었다.
우리는 민중의 권력이 사회의 모든 부분에 관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다양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미 참여예산제나 국민소환제와 같이 민중이 입법부와 행정부에 개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검토하고 있지 않은가.
사법부의 역할이 증대하는 것만큼 사법부의 구조는 민주화되고, 이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사법권력이 가진 전문가주의, 엘리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배심제와 참심제와 같은 시민참여재판이 조속히 도입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재판형식을 담지하고 있는 미국에서 배심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주로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백인이면서 앵글로 색슨족 혈통이고 신교도인 미국사회의 주류)가 참여하는 배심원이 엉뚱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배심원들의 판단이 시험선수들인 법률기술자들만의 판단보다 나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 싸워야 한다. 선출되지 않은 지배계급의 국가장치들은 정당하지 않으며, 민중의 숨통을 옭아매기 때문이다. 사법 권력 또한 선출하는, 그런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선출직으로의 전환이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상식에 입각한 판결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얼마 전부터 자본의 제한없는 활동을 주장하는 시장지상주의자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내에서도 헌법, 헌정주의에 관한 논의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최장집 교수 말대로 "우리 헌법의 핵심을 이루는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역할을 민주적 규범과 원리에 더 가깝게 하도록 하는 것" 아닐까? 정치의 경계를 넓히고, 민중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는 것, 이것 없이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민중의 참여가 확보되지 않는 한, 진보정당이 집권해서 할 것은 잠시 지배계급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전진 칼럼니스트 새벽별> www.goequ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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