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쓰러지다> - 한 해 2천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
“주 40시간, 최저임금. 데이트 비용을 가계부에 넣는 아이가 없다. 연애를 포기하겠단다. 결혼은 어찌 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지금 결혼이 문제냐고 짜증을 낸다.”
<노동자 쓰러지다>(희정, 오월의봄)의 한 부분이다. 우리 사회의 임금과 생활을 주제로 토론한 학생들이 한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삶은 어린 학생들조차 직감할 정도로 각박하다.... 국가에서 정한 법정노동시간만 일해서는 여가는 꿈도 꿀 수 없고 생존 자체가 전쟁이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장시간 노동이다. 혼인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이유는 학생들도 안다. 직장에 갇혀 있는데 어느 틈에 연애하겠는가? 결혼해도 문제다.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는 아이 얼굴을 보거나 함께 잠들 기회조차 빼앗긴다. 일상을 누려야 할 시간에 격무에 시달리고 경쟁에 매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연장·특근을 반복하다 과로로 병들어 요단강을 건너거나 생계난에 가정이 파탄난다.
산업재해
과로사할 확률에서 벗어났다면 산업재해가 삶을 위협한다. 납, 수은 중독에 따른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10만원짜리 울타리가 없어서 용광로에 빠져 죽는 사고는 1980년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파악하기조차 힘든 화학물질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집어삼키고, 건설, 플랜트, 조선소 노동자가 연간 1000여명씩 떨어져, 끼어, 감전당해 사망한다.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수백 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는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현 사회는 사고를 충분히 막을 수 있으며 다치고 병든 노동자들의 요양을 책임질 만큼 넉넉하다. 그러나 책임져야 할 누구도 산재사고라는 크나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국가는 산재 노동자의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깎느라 바쁘고, 자본은 산재보험료를 아끼기 위해 재해당한 노동자들을 협박한다. 다쳐 죽어가는 노동자는 구급차가 아닌 트럭에 태워져 공장 밖에서 숨을 거둔다.
불안노동
노동으로 자본가의 부를 일군 우리 노동자는 갈수록 심하게 착취당한다. 조선, 자동차와 같은 공업은 물론이고 철도, 통신, 물류, 의료와 같은 공공분야에서까지 사내하청과 비정규직이 확대됐다. 위험한 일은 모두 외주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개월짜리 협력업체 직원은 자신의 부당한 처지를 참지 않으면 해고위협을 받고, 정리해고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목숨을 끊는다. 우편 노동자는 ‘개인사업자’라며 배송차량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구입해야 한다. 청소년은 너무 낮은 임금에 ‘알바계의 막장’인 배달에 뛰어들어 다치고 죽어나간다. 노동자의 삶은 ‘도둑질’당한다.
노동자, 쓰러지다
저자는 조선소와 건설현장, 코레일과 KT, 우체국과 택배·퀵서비스 배달, 자동차 공장과 대형마트 백화점, 버스노동자, 간호노동자 등 산업현장 전반의 산업재해 문제를 취재했다. “왜 사람들이 일하다 다치고, 죽는데도 계속 죽도록 일하는가?”에 대한 답을 많은 노동자가 증언한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윤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이윤이 늘어날수록 노동자들의 삶은 퇴행한다. 하루에 7명씩 일하다 죽어나가고, 격일제로 버스를 운행하는 노동자들은 승객을 가득 싣고 도로 위에서 졸고 있다. 흡입만으로 치명적인 불산이 누출돼도 공장은 팽팽 돌아간다. 철도는 운영에 필수적인 인력을 감축하며 사고와 함께 피해자를 만들어낸다. 사회 곳곳에 있는 숙련된 기능 노동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깨달은 노하우와 기술을 물려줄 젊은이가 없어 노동의 대(代)가 끊긴다고 우려한다.
우리의 투쟁은?
우리는 무엇을 위해 노동하는가? 전자, 자동차, 여객, 조선, 간호 모두 무엇이 우선이랄 것 없이 인류의 생존과 풍요로운 삶을 위해 필수적 노동이다. 그런데 이 사회를 실제로 굴러가게 만드는 노동자들은 산재로 쓰러지는 반면, 사회적 기생충들은 노동자의 피땀을 너무 많이 빨아들여 배가 터지고 있다. 이런 사회는 뒤집어버려야 한다. 노동자들이 세상 구석구석을 책임지고 있으므로, 사회를 위협할 수도 있는 크고 작은 수단들을 노동자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할 때 ‘어느 수업시간’에 절망을 느낀 학생들도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지 않겠는가.
<알바노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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