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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투입이 아닌 집으로 보내주기 위한 고뇌에 찬 양심세력의 변
박완섭
20여일 동안 집으로 가지도 못하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최소한의 필수품도 반입되지 못하는 감금상태에 있는
저들을 집, 집으로 보내주어야 한다
우리가 누구인가. 투쟁 투쟁으로 돌을 던져 정권을 잡은
민주화 개혁 양심 세력이 아니던가
투쟁에 이골이 난 우리들
동지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지난날 우리들 우군이었던
노동자들의 파업을 언제까지 지켜볼 수 있단 말인가
가슴이 아파 잠을 재대로 이룰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노동자들이 농성을 풀고 집으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과거에는 노동탄압을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고
남산으로 남영동으로 끌고 가서 고문을 했지만
우리는 동지라는 그 이름을 잊지 못해
집으로 보내주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일세
동지여. 과거를 잊었는가
동지여. 우리를 잊었는가
우리의 이름 민주투사를 정말 잊었는가
세월의 덧없음을 탓하지만 바로 엊그제 일세
우리들의 얼굴을 잊었단 말인가
변절은 하지 말자던 굳은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던지고
단결 투쟁이 왠 말인가
거듭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그대들의 투쟁소식
열약한 환경을 보고 받고
집으로 보내 줄 수 있는 조취를 강구한 것 밖에 없네
다 알지 않는가
민주화 이후 노동탄압 같은 거 없다는 거
경찰이 여성 근로자의 젖 가슴을 만졌는가
물고문을 시켰는가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대규모 구속사태 같은 것을 원치 않네
집으로 가 있는 동안 구인장 같은 것은 없을 것이네
다만 사측에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 그것을 우리가 갚아주고 싶지만
조중동이 머라하겠는가
짜고치는 고스톱이라고 그러니 힘들더라도 서서히 갚아주길 바라네
새로운 세상 새로운 희망 새로운 미래가 있음을 잊지 말고
열심히 살아주길 당부드리네
이랜드보다 더 좋은 기업이 얼마든지 많은 이 나라에서는
블랙리스트 같은 것 없다는 것 민주노총 이름으로도 인정하지 않는가
비정규직 보호법은 꼭 필요하다
박완섭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자를 연봉제와 비정규직으로 갈라놓고
양극화를 실현한 우리들에게 단결 투쟁을 외칠순 없다
단결 투쟁은 우리들의 전매특허이다
비정규직은 우리들만이 보호 할 수 있다
단결 투쟁을 멈추고 집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이념에 물들지 않고
그 어느 누구의 사주에도 귀를 막고 자기에 맏은 직분에 충실한
노동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저들은 끝없이 가난해져야 한다
가나, 생활의 곤궁을 대물림시켜야만
빈곤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돈에 환장한 동물들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보호법은 꼭 필요하다
이 땅에 평등 다함께 못사는 빈곤화를 실현해야만
우리가 두 다리를 쭉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
온갖 욕을 해도 참아야 한다
참을 인자 세 개면 수배생활의 지긋지긋함을 피할 수 있다
그때의 궁핍 가난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
권력의 단맛은 착취에서 나온다
민주화의 가면 속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우리들이 매일 보던 얼굴 썩은 영혼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독재와 탄압의 시대는 가고
개혁이라는 독과점 권력으로
한 밑천 잡는 장사
세치 혀 바닥으로 자신을 속이고 역사를 속이더라도
정권이 바뀌지 않는 그 날까지 착취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너희들의 운명은 꿈에서도 돈 밖에 안 보이는
영혼이 제거된 짐승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박완섭
세계화는 레이건 노믹스가 아니다
세계화는 대처리즘이 아니다
세계화는 워싱턴 컨퍼런스가 아니다
세계화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아니다
세계화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세계화는 경제침략이다
세계화는 노동탄압이다
세계화는 민중탄압이다
세계화는 제국주의이다
세계화는 민족주의를 부정한다
세계화는 역사를 부정한다
세계화는 신 식민주의이다
세계화는
무늬만 개혁이고
민주화인 매국이다
---보이지 않는 식민지---
연대의 끊을 끊어라
박완섭
500일간의 농성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남성 노동자들의 폭력을 보라
연대라는 이름으로 파업을 하다
남성조합원들만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마초이즘
정부와 자본 남성노동자들의 삼각동맹
지치면 스스로 그만 두겠지 하는
무관심의 전략
화려한 유니폼의 예쁜 얼굴들
이제 와서 어디로 가라하는가
무언의 술집으로 가라고 등 떠미는
딸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라
남성노동자들의 단식투쟁은 결사항전이고
여성노동자들의 단식투쟁은 다이어트로 밖에 안 보이는
연대, 연대의 끊을 끊어라
남성폭력, 페니스의 폭력을 잘라버려라
KTX 여승무원들의 단식농성에 부쳐
용서해다오, 역사의 딸들아
박완섭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손가락질만 하는
나라의 남자들은 모르리
한 시대의 아픔이 파도를 건너
우리의 땅 말 음식 웃음을 만들기까지
낮선 땅에 뿌려진 눈물 색을
그곳에서 우리의 딸들이 미치지 않고
자신을 버린 가족을 모아 가정을 이루지만
끝내 그 가족으로 부터도 버림받는 못난 나라의 습성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하는 죄
외쳐러운 마음들이 모여 서로를 떠받치는 힘
흰옷의 서러움을 기지촌의 그늘에 남겨둘 수 없다
나라를 두 동강낸 몸들이 아무리 깨끗해도
영혼의 천 조각이 되어버린 것들의 자존심들이여
녹슨 철조망 하나 걷어내지 못하는 것들의 헛기침들을 용서해다오
이 땅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당이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자랑스런 역사의 딸들아
가난한 나라의 딸들로 태어난 죄
사랑도 죄가 된다면
조국을 버리라 해도 버리지 않는
---기지촌 그늘을 넘어서---
댓 글 문화와 접속차단
우리의 댓 글 문화를 천박의 예술적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데
그 말이 헛투로 들리지 않는 것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
눈으로 확인해보면 뒤로 넘어져 내진탕이 걸려 응급실에 실려가도
회생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그 글을 쓰는 사람들 보는 사람들 면역이전에 강심장이었는지
면역이 되어 강심장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가?
포유류의 종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천박은 모자람의 빔의 예술로
눈을 감으면 되지만
폭력성/ 단순폭력이 아닌 전염성이 있는 바이러스의 폭력적 언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예의는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닌 자신에 대한 예의이다
남. 타인까지 배려하는 과도한 집착이 빚어낸 결과라면 자정이라는 문화에
기대볼 수 있겠지만
자신에 대한 예의 부족 자해 행위의 글로 폭력을 일삼는 락을 시간에
맡겨둘 수도 없다
그렇다고 편리성을 내세워 법으로 재단하는 것도 옳지 않는 방법
수준의 절대적 빈곤을 탓하기엔 위험 수위에 오른 자기 표현이 무식이 아닌
유식의 지능성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명복을 비는 자리에 잘 죽었다고 하지를 하지 않나
단식 격려의 자리에 굶어 죽으라는 이야기
공당의 자유게시판을 무력화시킴으로서 반대급부를 노리는
민주주의 파괴행위
여성 정치인들을 향해 그곳을 찢어야 한다는 서슴없는 막말
이것이 이 땅의 여성단체 게시판에는 아에 자유게시판이 존재하지도 않는
이유이다
나는 마초이즘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싸이트 운영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개방하기를 요구하지만
너무나도 어렵다는 답변을 이해 할 수 없다
피하는 것 도피안사가 문제 해결의 첩경이 되지는 않는다
일부 정치인들 공공기관의 자유게시판에 로그인을 하라고 하는 것도
민주주의 파괴행위이다
개인 홈페이지도 열린 교류를 지향하는데 공공 공익적 사이트를
접속을 차단하는 나라
익명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을 차단이라는 또 하나의 폭력으로
정당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2분법의 경계짓기 편가르기 옹호로는 발전이 없다
서구의 68운동 신문화 운동은 이성의 자율규제를 발전적으로 풀어헤친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정교한 학문적 해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부 급진주의에서는 폭력의 정당성도 인정되지만
이 땅의 댓 글 문화와 공공사이트의 접속차단은 명분이 자기 규율이 없는
폭력이다
한 사회의 문화를 하향 평준화의 저질로 끌고 가는 선구자 분들에게
머리 숙이는 것으로 비난을 대신한다
밥보다 더 큰 슬픔
이수익
크낙하게 슬픈 일을 당하고서도
굶지 못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슬픔일랑 잠시 밀쳐두고 밥을 삼켜야 하는 일이.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밥을 씹어야 하는
저 생의 본능이
상주에게도, 중환자에게도, 또는 그 가족에게도
밥덩이보다 더 큰 슬픔이 우리에게 어디 있느냐고.
별나라로 가신 택시운전사께
아저씨 잘 가세요. 가셔서도 죽어도 굴레의 페달 같은 것은 밟지 마세요.
별과 바람과 눈물과 땅과 풀과 같은 벗들하고만 사세요. 푸르름을 못
따라오는 이념 같은 것들과도 사시지 마세요. 세상을 변혁하지도 못하는
운동가들과도 사시지 마세요.
인간의 대지에
또 하나의 별이 떨어졌다
큰 별도 영광된 별도 아니다
아주 작고 평범한 별이다
못 배운 별
살아평생 곁방살이 셋방살이였던 가난한 별
십 수 년 택시 페달을 밟으며
자본의 굴레 속에서 늙어만 가던 초라한 노동자의 별
너무도 평범해 집회에 나와도
보이지 않던 초췌한 별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작은 별들이 모여
세상의 씨앗이 되고 밀알이 되고 모래가 되고
하나의 기계가 완성되고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지고
별무리 진 아름다운 저녁이 된다는 것을
진실을 향해 쏘아진 하나의 빛나는 화살촉이 되고
불의에 저항하는 총탄이 되고 포탄이 되고
저 멀리 그리운 등대 불빛이 되고
내 앞의 눈방울이 되고
영롱한 촛불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 별들을 사살한 자들이 누구인가를 안다
그들은 역사 이래로 수많은 별들을
짓밟고 능욕하고 땅에 파묻고 철창에 가두었다
항거할 힘이 없는
어린별도 병든 별도 가리지 않았다
어떤 때는 광폭하게
어떤 때는 부드럽게 너희는 별들의
삶을 목숨을 빼앗아갔다
당신은 그것을 알았다
무론, 우리는 안다
허세욱, 당신을 죽인 것은 부패한 저들뿐만이 아니다
우리도 당신을 죽였다
진정한 민중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면서도
무능한 우리의 운동이 당신을 죽였고
한 사람이 거리에서 피워 올린 작은 불꽃을
수만 개 수십만 개 수백만 개
분노의 불꽃으로 만들지 못한
우리의 가나함이 당신을 죽였다
그 아픔과 설움이 우리도 안다.
가장 작은 별이
가장 낮은 별들이
가장 천대받던 별들이 이끌어 온
희생의 역사 사랑의 역사
변혁의 역사를 안다
당신이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외로운 불꽃으로
가나한 불꽃으로
속이 꺼멓게 타들어가는 절규로
이 땅은 갈아엎어져야 하는 죽음의 땅임을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주었다
그 길로 먼저 가신
헤세욱 동지여
잘 가시라
헤세욱 아저씨 잘 가시라
걱정마시고 잘 가시라
지상의 찌든 때 모두 벗고
오욕도 미움도 증오도 모두 벗고
별나라로 가는 택시요금은 얼마인지
물어 보시며,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때때론 기쁘고 행복했던 우리들의 시간을 기억하며
꽃도 무덤도 십자가도 없이
통일로 자주로 평등으로 평화로
그대 잘, 잘 가시라
송경동(민족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국토서시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닿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들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휴전선
박봉우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둠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피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내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 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공간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 뿐인가
언제 한번은 보고야 말
독사의 혀 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격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둠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피어야 쓰는가
임진각역 시비 신영복 글씨
여자의 사랑은
총알보다도 더 멀리 날아간다
김준태
여자는 약한 것이 아니다
여자는 시시한 바보 같은
남자들보다 더욱 강하다
그날 돌멩이 속으로 달려간 자들은 누구였나
그날 칼날 속으로 달려간 자들은 누구였나
그날 불 속으로 총탄 속으로 달려간 자들은 누구였나
그날 사람을 구하려고 울부짖으며 달려간
오, 어둠 속으로 묻혀간 자들은 누구였나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지만
동산 멀리 붉은 달이 떠오르고
여자들은 생명을 껴안으려고 달려갔다
(여자들의 젖은 남자들의 피보다 강하다)
여자들은 깃발을 찾으려고
깃발을 찾아서 사람의 뼈를 세우려고
찢어진 치마 석류알 가슴으로 달려갔었다
세상에 흔하디흔한 바보 같은 사내들
보라, 여자의 사랑은 총알보다 더 멀리 날아가지 않느냐
총알보다도 더 멀리 날아가
죽일 것도 기어이 젖가슴으로 누르고
살려낼 것은 기어이 살려낸다
오, 여자! 불 속에서도
꽃으로 피어나고야 마는 무서운 여자
이 세상 천지를 언젠가는 구해내고야 말 여자
감격의 여자, 인류의 마지막 얼굴!
이류의 마지막 꿈으로 뭉쳐진 여자!
대인동 부르스
곽재구
추석달이 밝은데
비인 거리에 너는 그림자를 띄웠느냐
콜타르 먹인 전신주 아래
다리 꼬고 턱 받치고 꼭 그렇게
눈물나는 모습으로 서서 너는 다시
이 거리의 슬픔으로 가을 달맞이꽃이 되려느냐
부평에서 반월에서 구로동에서
이름도 얼굴도 때묻은 젖 큰 가시내들은
고향이라고 명절이라고 다들 밀려오는데
전세버스의 차창마다 깨꽃 같은 그리움은 피었는데
네가 설 땅이 꼭 한 곳뿐이라고
너는 그 전주 아래 슬픔의 뿌리를 내리고 굳었느냐
그 무슨 한맺힌 기다림의 씨앗이라도 뿌렸느냐
어색하게 스타킹을 신고 원피스를 입고
사과 광주리 설탕 한 포 입어보지 못한
어머니의 겨울내복을 사들고
아버지의 소주와 동생의 운동화와 그림물감을 사들고
저렇듯 돌아오는 때절은
가시내의 웃음소리가 그리웁지 않느냐
추석 달빛은 찬데
대인동 골목마다 찬 달빛은 출렁이는데
굳어버린 너의 몸 위에 누가
창녀라고 낙인을 찍겠느냐
누가 한 오리 저주의 그림자를 드리우겠느냐
가까운 고향도 눈에 두고 갈 수 없어서
마음만은 언제나 고향 식구들 생각이 뜨거워서
홀로 들이킨 수면제 가슴 젖어오는데
추석 달빛은 차고 어머니는 웃고/ 너는 뜬 두 눈으로 달맞이꽃으로
대인동 골목마다 죽어서 살라 있는 눈물이 되었구나
쟁반탑
복효근
탑이 춤추듯 걸어가네
5층탑이네
좁은 시장골목을
배달 나가는 김씨 아줌마 머리에 얹혀
쟁반이 탑을 이루었네
아슬아슬 무너질 듯
양은 쟁반 옥개석 아래
사리합 같은 스텐 그릇엔 하얀 밥알이 사리로 담겨서
저 아니 석가탑이겠는가
다보탑이겠는가
한 층씩 헐어서 밥을 먹으면
밥 먹은 시장 사람들 부처만 같아서
싸는 똥도 향그런
탑만 같겠네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
복효근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 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
--중3학년 국어교과서--
안개꽃
복효근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는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슴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빛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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