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서울 소재 직업전문학교 졸업생들에 대한 조사에서 90 퍼센트 가량이 처음 취업한 사업장에서 1년을 넘기지 못한 채 퇴사했고, 30 퍼센트 가량이 최저임금 미달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다. 더욱이 그들 중 상당수는 최저임금법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서울시의회의 유일한 진보 정당 소속 의원이 직업전문학교들에 대한 행정 업무 감사를 하던 중에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교장 선생님들에게 “직업전문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노동자가 되는데, 직업전문학교에서라도 최소한 노동법 교육을 하라. 최저임금법이나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취업해야 할 것 아니냐?”고 주문했을 때, 교장 선생님들은 수긍했으나, 보수 정당 의원들은 “이것은 지금 노동운동을 유도하는 발언이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몇 퍼센트인지 파악해서 그런 사람들은 인성교육을 다시 시켜야 한다.”고 문제 삼았고, 사회를 보던 의장은 “앞으로 발언할 때는 ‘노동자’라고 하지 말고 ‘직장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라.”고 점잖게 충고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노사정 간에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6월을 맞이하여 또다시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자고 요구하는 경영계의 주장을 보면 우리 사회의 최저임금 제도에 대한 이해는 그 무렵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1953년 한국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피난 국회에서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최저임금제도 실시 근거를 규정했지만 그 제도가 시행된 것은 그로부터 35년이나 지나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해가 되어서였다. 그 이전까지는 기업의 지불 능력을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아무리 낮은 임금을 지불해도 규제할 방법이 없었다는 뜻이다.
최저임금 제도의 소중한 취지를 다시한번 상기하면 이렇다. “노동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기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최저임금법 제 1조).” 최저임금법뿐 아니라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한다”는 것은 거의 모든 노동법의 제 1조 목적에 빠짐없이 규정돼 있는 내용이다. 국가가 개입하여 노동조건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뜻이다. 이 조항을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왜곡하는 정신 나간 지식인 전문가들도 있기는 하다.
지난해 경영계는 경제위기를 이유로 최저임금 삭감을 요구했고 그 탓에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정부와 재계가 앞 다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조정하고 있는 마당에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경영계는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최저임금을 오히려 36.2% 삭감해야 하고, 최저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중소기업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어 고용 안정을 위해 최저임금 동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이야기하면서 노동생산성을 중요한 잣대로 끌어대는 것은 마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식사를 해야 했던 산업혁명 초기에 “움직이면서 하는 식사법이 건강에 가장 유익하다”는 연구 성과를 들이대며 장시간 노동을 합리화했던 지식장사꾼들의 행태와 비슷하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노동생산성 이론을 빗대는 전문가들이 과거 노동생산성에 비추어 노동자 임금이 현저히 낮았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습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줄어든다는 것 역시 이론이나 증거로 뒷받침되기 어려운 주장이다.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내수 진작과 경제 회복을 추진하는 정책이 세계적 추세다. 최저임금조차 감당할 수 없는 기업들을 계속 살려두는 것은 나라 경제에 유익하지도 않다. 노동자 임금을 절약하는 것 외에는 경쟁력이 없는 전근대적 기업들은 시장에서 도태시키는 것이 오히려 시장경제주의에 부합한다.
다만 실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동시에 마련돼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고소득자의 조세부담율을 높이는 것에 기꺼이 동의한다. 우리나라 평균 근로소득층의 소득세 및 사회보험료 부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낮다. 월드컵 16강을 다투는 나라에서 전체 노동자의 16%인 250만여명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결정될 때마다 길거리에서 농성을 해야 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외로워 보인다.
▼ 대부분 환경미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여성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앞에서 15일째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 ⓒ 참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