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 http://www.goequal.com
노무현과의 동거. 대통령의 연립정부 구상으로 민주노동당이 시끄럽다. 국가의 권력과 관련된 문제를 고작 개인 블로그 수준의 글로 세상에 던지는 대통령의 무신경함도 놀랍지만 그 정도 술수에 발칵 뒤집혀버리는 진보정당도 매우 안타깝다. 아무런 토론도, 동의도 거치지 않고 당을 대표해 버린 노회찬 의원도 놀랍기는 대통령과 매일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정치현실에서의 연립은 가능하지 않다. 이미 과거의 경험 속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됐다. 우리의 정치현실은 선거연합을 구성하건, 정책연합을 구성하건 다수파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서구와 같은 정치체제에서는 그런 행위가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지지만 강력한 대통령제에서는 욕 한번 듣고 임기까지 굳건히 버티면 그만인 것이다. 권력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개혁연합이니 하는 소위 “정체성의 동맹”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현실과 거리가 멀다. 다수파 형성의 대가가 권력의 분점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연립을 통해서 다수파가 소수파에게 제공하는 것은 권력의 일부가 아니라 정책을 조율할 권리일 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것은 지난 1년 동안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에 끊임없이 제안했던 것이다. 과거사법이 그랬고 국가보안법이 그랬고 그 외 여러 개혁입법이 그랬다. 그럴 때마다 매번 거부했던 것은 여당과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내각의 장관 몇 자리에 눈독 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입각해서 부분적이지만 현실적인 개혁을 펼쳐보자는 꿈인데 차라리 악몽에 가깝다. 노동부장관은 대한민국 노동부분의 대통령이 아니다. 관료들의 수장이거나 아니면 관료들에 둘러싸인 섬에 불과하다.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신자유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과의 동거는 진보정당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한 발판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진보정당 운동의 종말일 뿐이다. 진보정당이 체제의 개혁자가 아니라 체제의 중간관리자임을 자임하는 순간 그 생명은 다하는 법이다. 일본사회당은 자민당과 손잡는 역사적 결단을 통해 장관 정도가 아니라 50년간의 숙원이던 수상 자리를 차지했다. 얼마 후 일본사회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연립의 가능성을 시사한 노회찬 의원의 발언은 당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다. 비록 완전한 정당명부제, 국가보안법폐지, 비정규직권리입법 같은 “불가능한” 전제조건을 달았다고 하지만 그 전제들은 불가능하지도 않고 또 연립의 대가가 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정치개혁은 무엇의 대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수되어야 하는 과제다. 나아가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정권의 하위파트너가 되고 나서 비정규직권리입법 같은 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누가 보아도 노회찬의원의 발언은 민주노동당이 요구조건을 내걸고 협상에 들어갔다고 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언제 노의원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했는가?
민주노동당이 왜 당직과 공직을 분리하는지 그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다시 되새겨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노동당의 창당정신과 강령정신을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번 혼란을 계기로 앞으로 민주노동당 안에서 연립정권이 왜 불가능한지 대중적인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 미래에 예상되는 혼란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진보정당에는 진보정당의 길이 있다. 그 길은 대통령이나 어느 국회의원이 열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길은 당이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길이다. 민주노동당은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갈 뿐이다.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 (정책위원회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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