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권 반환논란이 보여주는 식민지의 현주소
최근 천안함 침몰 사건과 더불어 새삼스럽게 떠오른 이슈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반환 문제다. 전작권은 미국이 오랫동안 장악해온 것을 2012년 4월까지 4월까지 돌려주기로 한-미 양국이 합의한 상태다.
그런데 보수세력은 천안함 사태를 기화로 ‘안보 위기’를 제창하면서 “재검토”와 “연기”를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무시하면서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권한을 진 쪽에서는 스스로 내놓으려고 하고 권한을 못가진쪽에서는 한사코 안받겠다고 우기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수 없다.
오늘까지 한국은 세계에서 군사 주권을 외국에 양도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군 통수권이란 곧 군사주권인데 미군이 무기한 한국에 주둔하면서 우리 군에 대한 전작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후 제국주의 총수로 군림하게 된 미국이 한국을 강점한 것은 단순히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연부원을 약탈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더 근본적인 목적은 한국을 병참기지화하여 전 한반도와 아시아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서 군사적교두보를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정책은 정치군사적 예속과 군사기지화라는 양축을 중심으로 추진되었으며 그 기둥이 바로 전작권의 장악이었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군사적 강점 이후 65년간, 1950년 7월의 ‘대전협정’이후 60년간 그 유지 및 행사를 한 번도 포기한적 없던 미국이 왜 이제 와서 전작권을 ‘반환’하려 하는가? 한국을 군사적으로 예속시켜 교두보로 틀어쥐려는 미국의ㅣ 식민지 정책이 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전작권 반환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전적으로 부합되기때문이다. 전작권 반환은 미국 군사전략 집행의 교두보인 한국을 더욱 합리적으로, 더욱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의도에 따른 것일 뿐이다. 제국주의 총수로서의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과 한반도 지배 정책에는 아무런 본질적 변화도 없다.
미군기지 후방 이전이 노리는 것
전작권 반환을 위한 움직임이 커다란 진전을 보인 것은 2003년 해외주둔 미군의 재편과 맞물려 그 일환으로 군사분계선 일대에 배치된 미 2사단과 서울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한다는 결정이 나온 때부터였다.
미국은 냉전시대 이후, 특히 9.11 테러 후 ‘군사변환’이라고 불리는 해외주둔 미군의 재편을 추진해왔다. 종래의 중무장한 육군중심의 전진배치 전력을 축소하면서 하이테크화, 경량화, 효율화, 기동화 된 해군 및 공군 중심의 통합군을 편성해 96시간 내에 세계 어디든 신속히 투입할수 있는 체제를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즉 ‘신속기동군화를 위한 군사력의 재배치’인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한국에서도 중무장을 갖추고 군사분계선 일대에 주둔한 미 2사단의 일부를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으로 진출시키고 나머지는 미군 사령부가 있는 서울 용산기지와 함께 한강 이남의 평택으로 이전하고 있는것이다. 130억 달러라는 거액의 예산을 들여 첨단화, 경량화된 신속대응여단이 신설됨으로써 평택은 공군기지인 오산과 함께 해군 및 공군 통합기지로서 미군의 아시아 최대 전략거점으로 변모될 예정이다.
“북의 남침 위협에 대처”한다며 60년 이상 군사분계선 일대에 고정 배치해온 2사단과 서울을 점령하다시피 한 용산기지를 스스로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려는 미국의 속셈은 분명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대북선제공격 때 예상되는 북의 막강한 화력의 첫 공격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한 다음 신속기동군화된 미군으로 침공작전을 성공적으로 전개하려는것이다. 이와 함께 미군기지의 후방 이전으로 최전선에 대한 평시방위 책임이 한국군으로 넘어가 자기들의 부담이 줄어든다면 일거양득이 된다. 또한 인원 감축과 후방 배치로 여론을 기만하면서 미군의 장기 주둔을 꾀한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해외주둔 미군의 재편에 따라 한반도에서도 신속기동군 위주의 군사전략을 세우는 경우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이 미국에게 가져다주는 이익은 크게 상쇄되지 않을수 없다. 권한이란 책임을 동반하는 법인데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과 함께 지워진 책임은 오히려 미국에게 짐이 되는것이다. 사실상 한국군을 희생양으로 삼아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대북 침공작전의 효과성을 높이려니 작전권 때문에 발목 잡히는 책임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것이다.
동전의 양면인 ‘전략적 유연성’
작전권 반환에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입장이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해왜주둔 미군이 그 작전범위를 유연화 하여 특정지역에 구애됨이 없이 전 세계 어느 곳으로든 신속성과 기동성을 가지고 개입한다”는것이다. 이를테면 “세계 여러 곳에 주둔하는 미군에게 있어서 국경은 없다”는 얘기인데 미군의 세계적재편과 함께 등장한 논리이다. 이 논리에 따라 한-미는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충돌이나 분쟁이 발발할 경우 주한미군을 신속히 동원할수 있다고 이미 합의했다. 이로써 주한미군은 주일미군을 비롯한 아시아의 다른 전략적 거점들과도 보조를 맞추어 한반도뿐 아니라 그 어디에든 임의의 시점에 기동 투입될수 있게 되었다.
“한반도의 전문적 방어”를 운운하던 주한미군에 이제는 “지역 및 세계가 직면한 도전을 극복”한다는 성격이 공공연히 부여됨으로써 한국은 미국이 세계도처에서 감행하는 침략전쟁에 자동적으로 휘말려들게 된것이다.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실현을 위한 전초기지로서의 한국의 식민지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증거가 아닐수 없다.
더욱이 간과할수 없는 것은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논리에 주한미군의 ‘반출’뿐 아니라 ‘반입’도 용이하게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것이다.
타 지역의 비상사태에 대한 주한미군의 신속동원과 함께 한반도 유사시에 대한 타 지역 미군의 신속투입도 가능하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고 입장이다. 그것을 입증하듯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 협의회 공동성명에서 미 국방장관은 “한반도에 배치된 전력을 동원해서뿐 아니라 위기시 세계 전역에서 가용한 미군 병력 및 능력을 유연하게 증강배치하여 대한민국을 방위한다”라고 공언했다.
전략적 유연성의 논리를 제대로 관철하려면 무엇보다 미군의 행동이 자유로워야 한다. 한반도를 떠나 세계 임의의 지역에 임의의 시간에 개입하려는 주한미군에게 있어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은 족쇄가 되지 않을수 없다. 작전권을 반환하게 되면 미국은 주한미군 2만 8500명을 한국군과의 관계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활용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작전권의 반환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수 있다.
“작전권 반환”을 반대하는 식민지 노예근성
작전권 반환의 숨은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보수세력은 이구동성으로 “결사 반대”를 합창하고 있다. “안보 불안을 초래한다”, “한미동맹을 뒤흔든다”, “미군철수로 이어진다”는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심지어 “작전권 반환은 북에 바치는 남한의 초대장”이라든가 “한미의 힘으로 북침 통일과 중국 민주화를 이루자”는 막말까지 함부로 떠들고 있다. 한동안 여론의 눈치를 보며 잠잠했던 반대 목소리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상전의 뜻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부르짖는 “작전권 반환 반대”구호는 골수에 사무친 식민지 근성의 집중적 표현이다. 그것을 외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일제치하 친일파의 후예이고 광복 후에는 친미로 변신해 미국의 지배 정책 집행에 충실히 복종한 대가로 출세한 기득권층이다. 6.15를 “남침의 길을 닦아준 길”이라고 비방하고 반통일 집회에서 성조기를 휘두르며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르짖는 그들의 주장이란 두말할나위도 없이 ‘미군 영구주둔론’, ‘군사주권 영구 양도론’, ‘영원한 대미종속론’이다.
전작권을 스스로 내놓겠다는 미국의 속마음을 들여다봐도, 그것을 한사코 안 받겠다고 우기는 보수세력의 노예근성을 봐도 미 제국주의에게 군사적으로 완전히 결박된 식민지의 처지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똑똑히 알수 있다. 그런데 진보진영 일각에도 주권문제를 정치군사 분야를 위주로 다루는 전통 이론의 ‘제국주의-식민지’ 관점이 이제는 낡았다면서 한국의 식민지 예속성을 부정하는 논자들이 없지 않다. 답답한 일이 아닐수 없다. 미국에 의한 군사적 강점과 국토의 군사기지화로 어제도 오늘도 자주권을 상실당한 채로 있는 한국이 식민지가 아니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자주권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고 자주권을 상실하면 그 나라와 민족은 식민지 노예의 운명을 면할수 없다. 식민지란 외세에 의해 자주권이 유린되고 자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또는 지역)를 가리킨다. 한국의 식민지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정치군사적 예속에서 명징하게 드러나고 있다. 미군의 강점과 군사기지화가 민족자구권의 중핵적 요소인 영토와 주권의 침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작전권 반환’을 둘러싼 일련의 움직임은 식민지 한국의 현주소를 뚜렷이 보여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