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

작성자
사회민주노동당
작성일
2022-08-02 13:13
조회
115
“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는 직제개정안이 지난달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행안부 장관이 경찰의 주요 인사·정책을 총괄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경찰국은 경찰 인력 13명을 증원하고 기존 행안부 내 공무원 3명을 재배치해 16명 인원으로 신설돼 출범한다. 개정안은 지난달 15일 이상민 장관이 국민 앞에 발표한 지 18일 만인 2일 공포·시행된다.
이 장관은 지난 5월 12일 장관으로 임명된 직후 행안부 내에 장관 산하 정책자문위원회 분과인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를 꾸리도록 했고 자문위에서 나온 의견을 근거로 지난 15일 경찰국 최종안을 발표했다. 통상 40일인 입법예고 기간을 4일로 단축하고, 21일 차관회의와 26일 국무회의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경찰 제도개선 논의를 시작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경찰국 설치를 마치 군사작전처럼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1991년 내무부 치안본부를 외청(경찰청)으로 독립시킨 지 31년 만에 정부의 경찰 통제 조직이 부활했다. 하지만 관련 법률의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행령 개정으로 경찰국을 신설한 것은 적법절차가 아니라는 위법·위헌 논란이 여전하다. 정부조직법에는 시행령 개정으로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 통제 권한을 줄 수 있다는 어떠한 규정도 없고, 정부조직법이 그것을 위임한 바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조직법은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과 동시에 시행된 1호 법률이다. 당시 내무부 장관의 사무에는 ‘치안’이 포함돼있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경찰이 이승만 정권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고 그해 7월에 개정된 정부조직법에선 내무부 장관 사무에서 치안이 빠졌다.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군부세력은 다시 치안을 넣는 내용으로 정부조직법을 개정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은폐 사건과 같은 권력의 부당한 개입을 방지하기 위해 1990년 12월 정부조직법이 개정돼 내무부 담당 사무에서 치안이 다시 삭제됐다. 1991년에는 경찰청이 외청으로 독립되고 경찰법이 제정되면서 경찰 고위직에 대한 경찰청장의 추천권이 신설됐다. 2003년에는 경찰청장 2년 임기를 보장하고 법령을 위반하면 국회가 탄핵소추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는 방향으로 관련 법이 개정됐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내무부의 사무에서 치안을 삭제해 내무부 치안본부를 폐지하고 경찰청을 독립외청으로 새롭게 설치한 정부조직법 개정의 역사적 맥락과 입법 취지에 따르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지 않고 시행령으로 행안부 경찰국을 설치하는 것은 위법이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행안부 경찰국을 신설하는 것은 정치적 꼼수(편법)가 아닐 수 없다. 시행령은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에 한해 행정부가 규정하는 것일 뿐, 행정부가 마음대로 법률의 위임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월권이다. 위법이요 위헌이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지휘·감독한다는 점을 들면서 경찰국 신설을 옹호하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정부조직법에는 법무부 장관이 관장하는 사무로 검찰이 포함돼있고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명문화했다. 하지만 행안부 장관이 관장하는 사무에는 치안이 포함돼있지 않고 경찰의 조직·직무에 대해선 법률로 따로 정한다고 돼 있다. 따로 정한 법률이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경찰법)이고, 경찰법은 국가경찰 사무에 관한 인사, 예산, 장비, 통신 등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의결하기 위한 기구로 ‘국가경찰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행안부 업무에 치안 업무는 없고, 행안부 장관은 경찰 사무에 개입할 법적 근거 규정이 전혀 없는 것이다.
행안부의 경찰국 설치에 대해 경찰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윤석열 정부의 경찰 장악 의도”라며 반발했고, 일선 경찰들은 삭발과 일인 시위 등으로 항의했다. 경찰서장들까지 나서서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열고 행안부의 경찰국 신설 반대 입장문을 발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 내부의 강력한 반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추진하는 정책과 조직개편안에 대해 집단 반발하는 것은 중대한 국가의 기강 문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논리라면 이른바 ‘검수완박법’에 대해 검사들이 집단 반발했던 것도 국기 문란 아닌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대해 ‘검수완박’이라고 반발하면서 검찰은 한목소리로 정부와 국회를 성토했었다. 평검사와 부장검사, 검사장이 각각 회의를 열었고 “정부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추진하는 정책과 조직개편안에 대해 집단 반발”했었다. 검찰의 반발은 정당했고 경찰의 반발만 부당한가?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던 윤 대통령의 자기부정, ‘불공정과 몰상식’이 아닐 수 없다.
윤 정부는 ‘국가가 경찰을 통제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강변한다. 과연 그런가? 미국의 뉴욕경찰청장, LA경찰청장 등은 시장이 임명한다. 연방수사국(FBI) 등 연방경찰기관의 장은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을 얻어 임명한다. FBI는 법무부 소속이지만 예산 관리 지원만 받을 뿐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영국에서는 런던경찰청장만 빼고 나머지 지방경찰청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며, 경찰청엔 민간인으로 구성된 경찰위원회를 두고 경찰을 관리·감독한다. 런던경찰청장은 다른 지방경찰청장과 달리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 커미셔너라고 불리는 민간인 신분이다. 경찰의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물론 경찰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은 아니다. 경찰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통제는 권력에 의한 정치적 통제가 아니라 시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여야 한다. 지난달 23일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는 입장문에서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민주적 통제에는 동의하지만 경찰국 설치는 역사적 퇴행”이라고 일갈했다. 맞는 말이다.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시민의 경찰이 필요하다. 현행처럼 대통령이 경찰청장 및 지방경찰청장을 임명하는 현행 국가경찰제 아래에서는 시민의 경찰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앙의 경찰청은 인사권을 틀어쥔 대통령실과 행안부의 명령에 따르고, 지방경찰청은 그런 경찰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터다. 결국,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찰은 시민들의 요구와 직결된 치안 서비스보다는 정보와 보안, 시국 치안(경비) 등 국가권력의 요구에 복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짭새’라고 불리면서 비난을 받아 왔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경찰이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라 시민의 경찰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국회가 역할을 해야 마땅하다. 행안부의 경찰국 설치와 같이 행정부가 시행령으로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사태를 방관한다면 그것은 국회의 임무 방기다. 국회법 제98조는 대통령령 등의 법률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하고 정부에 송부하는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권력에 의한 경찰의 정치적 통제를 막기 위해 국회가 나서야 한다. 위임입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정부의 시행령을 수정할 수 있게 국회법 개정도 해야 한다.
국회는 국무위원 해임 건의나 탄핵소추도 할 수 있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해 과반 찬성이면 가능하다. 현재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은 169석이다. 행안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나 탄핵소추는 민주당 단독으로도 처리할 수 있다. 민주당은 “치안 시행령 쿠데타”라고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2022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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