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죄일기: 민족주의만으로는 자본주의를 이길 수 없다.

작성자
사회민주노동당
작성일
2022-08-20 18:0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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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만으로는 제국주의를 이길 수 없다.


민족주의만으로는 제국주의를 이길 수 없다.
세계 열강이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러 또아리를 틀고 조여온 이후로 자본주의의 장수 제국주의에 대한 계급사회 사상적 대안으로 민족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흘러간 물레방아의 물처럼 제국주의를 이길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족민주 세력은 자본가들의 세계적 국가주의에 맞설 만큼 충분하게 투젱 결의와 조직이 세워지지도 않았으며 계급투쟁에 대한 국제주의의 단결 투쟁에 견줄 만큼 다양한 역사적 봉기에서 승리의 사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봉건시대 전제 왕권은 황제 제후와 귀족들간의 투쟁으로 시민혁명을 야기했으며 역사에서는 프랑스 혁명 이후 최초의 노동자정부인 파리코뮌을 낳기도 하였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앞으로의 해방투쟁에서 그들로부터 혁명 전장의 야수성처럼 배울만한 기상을 가지고 있다지만 붉은 색깔의 확고부동함이나 과학적 세계관이 지칭하는 계급갈등 해석의 세계관 등 철학적 강령과 이로부터 도출된 전략과 전술이 아직은 부재하다. 완전한 철학을 가지려면 더 투쟁을 해야 하고 더 학습을 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시대를 주도하는 독점자본과 그들의 동맹세력을 지배자로 맞이하여 그들의 전장 동맹에 맞서서 투쟁하고 승리를 거둘만한 위인과 영웅을 아직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노동자에게 학습의 부재 정치결사의 미완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노동 조국에서 노동자계급에게 혁명적 영웅은 이미 다 죽은 옛날의 봉건영주 장수들의 발자취들 뿐이고 장수가 있다면 의혈단이나 무정부주의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자본의 전면적인 공격과 그들의 제국주의자 정권인 파시즘이 반공의 깃발 아래 전 세계적인 중상주의 흐름을 만들고 그것의 결과인 시장 패권을 휘두르는 제국주의 세계화 자본가 천국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사적재산에 광분하여 강압적으로 노동 무산계급을 핍박하고 관료들은 노동자와 빈농을 착취 수탈하는 데에 혈안이 되고 있다. 온갖 국가기관을 동원하고 정권의 안보를 생명줄처럼 여기고 국가의 폭력기관을 단단히 단속해서 전국적으로 무산계급을 공적인 폭력으로 억누르기에 이런 반공 세력에 맞서서 싸워온 단체와 당이 반제국주의 깃발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면 투쟁은 때때로 패배로 끝나고 청년정당의 지도적 권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혁명적 노동자당 창당과 아울러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무장한 노동학도병 여단을 창건해야 한다.
이것은 러시아 농노해방 반봉건 투쟁의 선도자인 인민주의자처럼 한 번의 혁명적 물결로 끝날 수 있고 농노해방이라는 생산양식 교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남녘의 인민주의 또한 해방 직후처럼 사회주의 깃발 아래 반제 반파시즘 전황에서 승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인민주의자 그들은 사적으로 보복을 응징하는 것을 최고의 강령으로 삼기 때문에 계급투쟁의 전황을 계급에게 이롭도록 장기적으로 이끌고 가지 못한다. 아니 전혀 정세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이는 투쟁 전선의 확산을 부르는 선전선동가의 고립무원과 정치적 행동의 봉쇄 그리고 조직가 부재의 활동가당이 인민주의처럼 전술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한 일본의 전 수상 아베 살해처럼 아무런 승전보의 성과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냥 사적인 원한풀이이고 개인적 응징차원에서의 자객주의이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에게 주도권을 쥐어주기를 거부하는 소자산가들의 전형적인 나홀로 봉기다. 한국의 나로드니끼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점이 발견된다. 민중속에서 인민을 뒤따르자는 이대남 청년 나로드니끼는 인민속으로 들어가 어떤 깃발과 어떤 대중투쟁을 만들어내었는가? 노동대중이 아닌 현역 예비역 사회복지 회의밖에 한 것이 없지않는가? 혁명가당이라는 최고의 결사 조직과 그들의 민주 기지인 민족민주주의 투쟁을 만들 의지가 있었던가? 인민주의는 병역의무를 다한 예비역이지만 민족이라는 경계에 국한된 국가주의의 대중이고 농민운동의 꽁무니주의자들이다. 청년 좌파 나로드니끼는 또한 노동자계급의 민주 기지인 공장을 요새화하고자 어떤 선전 선동을 펼쳐왔다고 자신하는가? 나로드니끼의 지배적인 사상은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징집병들의 예비군 고향 사랑이며 땅을 지킨다는 병정놀이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처럼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의 현실 타협 국면에서 부르주아 민족주의 세계관의 하나로 쁘띠부르주아지 사상과 일치한다. 노동자단체를 저버리고 인민속으로 들어가서 반봉건 혁명을 어떻게 전화시켜 민주주의 혁명으로 바꾸어 내고자 민중 항쟁과 학습을 준비하였던가? 촛불이 불타오른다면 사회과학을 갈고 닦아야 한다. 반파시즘 항쟁을 조직하고자 대중을 투쟁 전선으로 조직한 적이 있었으며 어떤 사회과학으로부터 유래된 의식화 조직화의 실천적 발자취를 가지고 있는가? 마르크스주의를 버린 인민의 벗은 인민 속의 지도자를 어떻게 계급의 장수로 훈련시켜 지도자를 만들어내고 노동자군대로 단결의 집단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기본소득을 혁명의 단초로 여기지 않고 최고강령으로만 해석한다면 이는 러시아혁명의 브나로드 사회주의 청년들의 농촌 투신 운동인 나로드니끼로 규정되어야 한다. 나로드니끼는 의열 단체이지만 혁명보다 테러리즘에 치우친 우익적 결사체다. 개인적 보복을 좌표로 삼고 소부르주아적 정체성을 가지지만 혁명의 시기 민족적 지도조직인 사회민주주의를 부정하기에 그 실천은 무정부주의로 나타난다. 나로드니끼 깃발의 비판적 결론은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인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그 주체가 단체가 아니라 개인적인 결의로 내던져지는 산개전이다. 이는 곧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체제에 예속되거나 국짐당 또는 국민의당 애국주의로의 전락하는 즉 국민당군으로의 반동적 백의종군일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장수가 민족주의의 대장군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문재인 장수는 퇴임한 퇴물이다. 문재인 민족주의 시절에 소리 높였던 노동자정부 주창자가 스스로 장수가 되려고 무엇을 결의하였으며 노동해방 깃발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무슨 투쟁을 주장하고 결의하였는가? 깃발 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주의자들의 수하로 격하되어 국민당군의 병졸로 들어가는 것이 과연 맞는가? 무노조 사업장에 노동자로 가는 것은 예비역 개인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고 목적의식적인 조직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변혁은 엄두를 내지도 못한다. 사회주의는 말마따나 집단주의로부터 정치생명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임금을 얻기 위해 현장에 들어갔다면 그것은 노예화이지 않는가? 조건 없는 노동계약이고 자본가와 개별적인 타협이기에 이는 국민당군들의 전쟁 하수인이 되는 것이고 민족주의 단체처럼 깃발 없는 인민주의로 변형되고 제국주의 전쟁의 낙오병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즉 숫송아지가 다시 모기에게 피빨리는 축사 밖 머슴살이 황소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이 굴욕적인 타협은 뒤따르는 노동자들과 민중을 투쟁 의지를 꺾여 내리고 자본가에 대한 간접적 투항을 불러올 뿐이라서 정세 고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로드니끼는 빈약한 이론에 의지한 평범한 인민의 벗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민당군 아래로 백의종군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 국민당군은 소수정예가 원칙이고 반공주의 깃발을 든 반혁명 골수 세력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장에서 연줄로 들어와 관리자라는 직책을 맡아 군대를 사회로 확장하는 군바리 세력이다. 우리는 노동쟁의를 발판삼아 노조를 만들고 반제의 전선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안악법 폐지와 노동악법 철폐를 구호로 내걸어야 한다. 청년들도 또한 일상적으로 사회계급의 최하위 계급에서 날마다 자본의 착취와 수탈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곳에서조차 삶의 평화가 옥죄여 오고 생계의 전선에 간단없이 고역의 현장으로 내몰리기에 노동자들은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노조 깃발아래 뭉쳐 투쟁을 결의해야만 한다. 열강에 의한 간섭으로 민족적 주권의 피탈된 뒤 자주권이 능멸당하고 종속화하는 것은 노조가 없어서이고 노동자당이 결당되지 못해서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노와 투쟁부족은 오늘내일의 일만이 아니다. 한국전쟁 직후 자유당내에서 그리고 민주당내에서 처럼 그리고 단독 정부에서 쫓겨나는 정적 숙군으로 4.19때에는 혁신파가 피살되고 배척되어 수십년간 진보정치는 정치적 공백기를 낳았다. 이 시기 지식인 계급의 사회주의당에서의 낙화는 의인 혁명 단체의 고립처럼 민족이라는 모국에서 빨갱이로 몰리고 반공법의 위반자로 척살되어 사라졌다. 또한 대중들은 민족 전쟁의 시기 일상적인 패배의 연속선상에서 국민방위군의 몰살처럼 군대로부터 무장이 해제된 후방지역 속에서 군경의 감시를 받으며 삼남지방을 헤매다가 굶어 죽어갔으며 그로부터 수 십년 동안 진보세력이 정계에서 축출되어 정세 주도권을 공화당명의 국민당군에게 빼앗긴 채 등에의 먹이가 되어가고 말았다. 반공이 직업을 변경시키고 사상을 전향하게 한 것처럼 진보를 사상전향시키고 호응하지 않는 사람은 사법살인을 하고 정부에서 영원히 축출한 사례처럼 국가의 적으로 둘러 채워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인민주의는 대한노총 속의 노동운동가들의 노동자 사상이기도 하다. 또 오늘날에는 윤석열을 찍은 현역 이대남들이다. 병사월급을 최저임금보다 많이 쳐준다하기에 앞도 뒤도 따지지 않고 사회주의를 버리고 파시즘에 표를 던진 머저리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민주의는 대중 추종주의를 말한다. 자본가들의 선무 공작에 속아 가족과 친구를 버리고 제 몸 하나 살리기에 천착하는 청년사업가들이다. 자본주의를 알지 못해서 자본가에 투항하거나 자본 독점 현실에 눈감고 정치투쟁을 방관하는 미래의 청산주의자들이다. 모든 청년정당과 청년 정치 세력이 바로 오늘날의 이대남처럼 제 수입만을 따지고 그것에 따라 정치적 입장을 쉽게 변경하는 변덕쟁이이거나 떠나온 농촌을 생각하며 벗님질에 여념이 없는 나로드니끼인 것이다. 청년 나로드니끼는 기본소득의 공상과 사업가 최고의 환상에 빠져 공장으로의 투신과 현장에서 노조원 되기를 겁먹어하는 나약한 알바 대학생과 연애로 날을 새우는 청춘들이다. 이들은 굥을 대통령으로 선거하면서 무전취식이 보장되는 군대로 후퇴하여 국가주의와 타협하였고 상전을 위해 목숨을 던지자는 가미가제식 애국주의에 매몰된 이대남 청년들이다. 이들이 현장 이전을 주저할수록 독점자본의 노동력착취 시민권자로 독점자본의 축적에 일조하는 먹이감이요 표적이 되고 만다. 그들은 전투부대가 하사관 월급으로 배불리는 군대를 그리워하며 군산복합체의 냉전 놀음에 빠져 전쟁연습에 매료되어 이성을 잃고 있다.

외세의 전쟁놀음에 따라 미제의 하수인 노릇하는 모두가 인민주의자들이다. 민주화나 노동중심성보다 돈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에 스펙을 쌓아 계층상승을 꿈꾼 학버러지들이다. 지금 청년이라고 아니 다르겠는가? 군산결합 군수산업자본 이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은 공장에서 일터에서 근로파가 된다는 것일게다. 제국주의가 이식해온 계급지배 현실에서 민족의 장벽을 방심하고 저들의 증권시장의 시세에 따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취업의 문을 찾는 장돌뱅이들이다. 독점자본이 뿌리나린 계급내 위계 장벽에 부딪혀서 자주성을 잃어가고 해방구를 빼앗기고 얼렁뚱땅 오픈 샵 속임수에 넘어가 투지와 목적의식이 없는 임금노동자가 된다는 것이고 이것은 수구세력에게서 얼토당토 않는 차별과 억압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나로드니끼는 민족해방이라는 오래된 미래를 내일의 꿈으로 삼고 있지만 국민당군이 사회적인 기술 무장면에서 월등히 우세하기에 이십대 청년 프롤레타리아트는 패배주의로 귀착되어 간호하사관 품에서 레닌 기치를 놓쳐버리고 진영의 구석에 주저앉게 될 것이고 생존투쟁을 잘못부린 댓가로 정세가 몰락하여 거럼뱅이로 주저앉고 말 것이다. 오늘날 대공업이 발달한 조건에서 군대 장교가 회사를 지배하는 위계적 질서의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지배사회의 근저를 차지하는 공장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만의 조직과 그들만의 장수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정당방위의 물맷돌질 무력조차도 없다. 이것이 남한이라는 계급사회의 피할 수 없는 한 단면인 것이다.

파국이 임박했다. 그것을 어떻게 돌파하고 해결책이 되는 돌파구를 만들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파국을 맞이하게 된 까닭이다. 노동의 기초를 가지지 못한 탓에 자주의 기초조차도 없다. 강조하건대 노동자계급은 출중한 군대를 당의 기반으로 쥐고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반제국주의 전쟁에서 김일성 장군처럼 사회주의적 투쟁의 조직화로 국제주의적 노동계급의 민족간 계급의식 협력의 성과로서 붉은 장수를 배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군대와 노동동맹 깃발의 단체가 정세를 이끌고 가게끔 청년학생과 청년노동자들은 정치선전과 반제국주의 반전운동에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전쟁이 이같은 비극을 만들었으며 이 모순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제국주의자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파업과 집회 시위 결사를 마다하지 않고 가두 투쟁과 행진의 대오로 적들의 오금을 저리게 해야 할 것이다. 선봉의 가두투쟁은 동맹을 결사하고 선전조직은 기관지에 의한 선전가 활동을 그리고 반전 선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활동가 전위에 힘입어 일 년 중 광복절 단 하루만 승리의 날이 아니라 매월 매주 매일 계급투쟁 전선을 떨쳐 일어나 날마다 승리해야 한다. 승리의 조건은 노동이 온전하게 주권으로 자리잡도록 노동을 방해하고 노예로 전락시키려는 제국주의자 전쟁에 대한 반대의 천명과 가두시위일 것이다. 민주주의 혁명과 함께 민족 민주주의 혁명을 펼치고 산과 강에서 사회민주주의자를 중심으로 강고한 반전 동맹세력으로 떨쳐 일어나 자신의 정치조직을 만들고 대중투쟁 속에서 정치투사로 자신과 동지를 단련시켜 나가야 한다. 노동자들은 혁명적 붉은 깃발과 함께 노동자당의 깃발 아래 뭉쳐야 하고 공황의 일상화 속에서 매월 매주 매일의 생계를 쪽박째 깨뜨리고 표주박을 빼앗고 와해시키는 모리배 정권의 정치 공작에 맞서서 결정적 시기에 봉기해야 한다. 또한 자본의 희생자를 자신의 동지로 맞이해야 하고 어려운 시기를 대비해서 해고자단체에 가입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이에 호응하여 거의 매월 매주 매일 매시 농민동맹을 주장하고 쌀값 하락에 맞서서 자발적 봉기를 밑거름삼아 노농동맹이라는 서로 다른 계급간 단결을 주문해야 한다. 선진적 활동가와 노동자들은 연대의 기치로 노동계급을 이끌고 전쟁에 맞서서 대동단결을 결사해야 한다. 더 나아가 날마다 혁신하는 저 단군 민족주의자들의 혁명 운동사처럼 용맹한 정치 투사들이 되기 위해 가두출정을 거리낌없이 결사해야 한다. 또한 우리 인민의 당파와 노동당파는 북녘의 노동자들과 손잡기 위해 민족의 동질성을 찾고 동포적 우애를 회복해야 한다. 북의 노동자들은 민족의 반쪽지기이고 삶의 동료이며 혁명투쟁의 동지들이다. 또 노동자들은 저 단군 민족주의자들의 꿈처럼 미국과 일본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공개적인 전투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제국주의 그들의 앞잡이 언론의 나팔수들과 저들의 잇권 독점에 맞서서 가두에서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매일의 사상 전투를 벌이어야 하고 국민당군과의 반정 전투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인민이 전투를 시작하자면 노동자 해방동맹을 조직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오늘날 민족주의자는 몇백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민족 전쟁을 벼르고 확전을 바라지만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은 투쟁이라면 열강과의 전쟁을 상정하지만 남조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큰 전투는 반제국주의 투쟁이고 반자본주의 사상투쟁이다. 물론 작은 회사내 전투조차도 버겁다. 매일 공장과 현장에서 빚어지고 있는 품삯 흥정 전투 즉 쟁의가 필연적이어도 이것이야말로 일반적인 노동자 투쟁의 모습일 것이다. 한국은 불완전한 계급사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필연적인 왕국에서 자유로운 왕국으로의 사적 전투는 사업장 안에서 더 잘 일어난다. 이러한 전투를 민족주의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풀뿌리 민주주의 혁명 전선의 와해로 파국으로 줄달음치기에 사회주의 깃발을 들고 방어력 있는 민주 진지를 지켜내자는 생산적 민주기지론의 전술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은 공장을 거점으로 삼자는 노조와 노동자당 의식화 조직화 이외에도 가두에서의 행진 투쟁에 걸맞는 다른 대중노선을 요구받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파업문화제가 아니면 파업선봉대의 예술공연에 함께하자는 것이다. 선전선동가가 없는 청년 활동가 조직은 정치노선도 조직노선도 미래의 단결과학도 찾아낼 수가 없게 된다. 선전선동도 과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주자가 생기는 것은 현장성과 대중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중노선이란 활동가들이 제기한 실천노선에 따라 선전선동가들이 대중적 전위당을 만드는 과정에 선진노동자가 참여함으로써 전투적인 요구를 슬로건으로 현상화하자는 정치투쟁일 것이다. 계급투쟁을 선도하는 혁명 전위의 출현을 앞당기기 위해 대공업적으로 선동가 조직을 일구는 노동대학의 설립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청년들은 반제 투쟁에서 이기려면 맑스주의 과학과 유물론 철학을 투사의 자양분으로 삼아 용맹하게 떨쳐 일어나 가두에서 전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실천이다. 청년에게는 기회가 많고 선배도 많기에 조직화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진리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실천만이 증명해낸다. 반제가 맞는가? 반자본이 옳은가? 그 명제는 오직 실천가만이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 자 붉은 동지죽을 배웠다. 청년들끼리 나눔을 조직하거라! 이것이 전위당의 대중노선이다. 이러한 대중적 전위당 조직노선의 부재는 즉 노동자단체에서 노동자 조직화를 통한 경제주의적 실천의 범람은 정치투쟁을 따로 조직하지 못함으로써 파국을 재촉하고 전선의 이탈을 조장한다. 선진분자가 빠뜨려진다면 이데올로기 전선에서 역동적 역할을 잃음으로써 부르주아 민족주의에 봉사할 뿐이다. 붉은 국제주의를 깃발로 단결한 일군의 모임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대중적 쟁의는 프롤레타리아 민족주의 이외의 전투에서 수평주의 평등파처럼 투쟁한 보람도 없어지고 앞서서 싸운 의미가 반감되어 무용담이 엷어지게 됨으로써 무용지물 청년정당은 반혁명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현장의 경우는 역사적 투쟁에 관한 잔여 조합원과 과학이 없다면 이것은 다람쥐가 쳇바퀴를 맴도는 일과 투쟁에 머물러 노조 관료들의 수정주의 압력에 굴복하고 암묵적으로 사장에게 복종하고 부르주아적 분업 생산에 신입내기로 무정부적 생산에 기여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주의는 계급투쟁에서 결정적인 전투를 회피함으로써 패배를 맛보게 된다. 깃발 없는 인민주의도 깃발 없는 민족주의처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시대에는 결코 큰 승전보를 쟁취할 수 없고 동맹이 없다면 불가능한 승리이다. 깃발을 접는 타협은 강령 없는 민주화이고 이론이 없는 깃발은 정치적 성과를 기대하여 얻을 것이 없는 맹목적인 항전 전술일 뿐이다. 민족국가에서는 사상투쟁 이외의 무기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체제변혁에 묵시적으로 인민주의와 똑같아서다. 또한 제국주의에 대한 전민 항쟁이 반사회주의 국보법으로 또 부르주아 노동법으로 그리고 그 외의 민법 판례와 정부의 유권해석으로 탄압을 받기 때문에 드물게 나타나는 대중파업 또한 사회주의를 배우는 걸음마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보법 철폐를 대중적 투쟁강령으로 제기해야 한다. 반사회주의 반공법은 이미 세기의 사분지 삼 쿼터를 넘기고 있다. 반공법은 공산주의를 금하고 정당을 억압하고 야당인사를 갈라놓은 정권보안법이다. 파업에 대한 족쇄를 풀자면 계급적 대중정당이 자유로운 설립과 함께 사상의 자유에 족쇄 채우는 전위정당에 대한 억압의 사슬이 사라져야 하기 때문에 그 투쟁은 혁명적이다. 우리는 투쟁을 결의해야 햔댜. 실천만이 공안국가법을 파탄내고 종국적으로 운동만이 이를 폐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져야 노동자당도 결성되고 노동 적군도 창건된다. 파쑈악법이 사라져야 가두에서 황색의 깃발을 내릴 수 있고 붉은 혁명의 깃발을 내걸 수 있다. 공안기관 사찰법이 사라져야 행군도 투쟁도 자유로운 정치활동이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서둘러 노농총동맹 깃발 아래 공안 통치 해체 악법철폐 전선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가지고 전국을 조직화해야 한다. 반노동 반사회주의자법과 반노동 파업통제 규범 제도 철폐를 위해 반 공안의 입지에서 악법 철폐 투쟁을 결사하고 투쟁잔치를 벌이어야 한다. 이러한 결의가 확산되어 갈수록 지지자가 늘어나고 동조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노동자동맹은 목숨으로 전선을 사수토록 반제 반전의 기치를 선전선동을 통해 선진적 생산활동을 조직해내라!! 마르크스 레닌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주의 단체나 인민주의 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서는 자기 계급을 해방의 국면으로 이끌고 갈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의 전위이면서 민족의 전위다. 노동의 전위만이 진리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활동가당을 결의하라! 청년노동전위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이 주체가 되기 위해 매번의 전투에서 승리해야 하고 반독점 자본주의 저항에서 항상 최후의 보루이다. 반제반전 전투의 마지막까지 부르주아지 반대 세력을 자처하고 반독점 전투에서 승세를 이어 잡기 위해 농민들과 계급동맹을 결사해야 한다. 농민들의 처지를 조사로 알아내고 선진분자와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농민의 군대와 동맹을 맺을 때만 동등한 위치에서 반독점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고 반제강령 또한 과학성을 쟁취하게 된다. 반독점 반제 반전 강령만이 민중 연대를 건설할 수 있다. 반전투쟁에 불을 붙여라! 제국주의에 비타협적이더라도 현실의 자본주의에 타협적인 국수적 국가주의 즉 부르주아 민족주의는 예를 들자면 청년 나로드니끼는 언어의 영역권인 백의의 겨레 하나되기가 사회민주주의자가 제창하는 민족주의라기보다 독점자본처럼 혈통 민족주의로서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의 사상이며 사회민주당보다 더 우측에 있는 권위주의 파시즘의 순찰대다. 자유주의 민족주의는 정통민족주의와 달리 유산민족주의이며 지배계층을 지지자인 국민전선의 충성사상이고 그 추종자들의 집합 놀이에 불과하며 이에 동원된 관료를 숭상하라는 봉건귀족 회복 정신일 것이다.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자화자찬으로 세력화를 넓히고 있는 국민전선이 광범위하게 언론과 신문을 지배하고 그 역학으로서 의회 의석을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면 노동자들의 해방 투지와 노동자당의 깃발은 앞으로의 전투에서 승전보를 얻지 못해 두 해가 지나면 의회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으며 그 때에 가서야 재현되는 파쑈정부의 악의적인 왜곡은 재야와 야권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져 탄압은 불을 보듯 확연해지고 계급 전위는 탄압으로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청년들의 정치의식을 반영하는 폭압적인 사회주의자 탄압법이 만들어져 공안 통치 파국을 만들고 반동이 부활해서 폭압적으로 노동자와 민중을 지배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임무가 부여된다.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보완하는 새로운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밝히는 탐구작업이다. 이 작업은 노동자와 농민의 단결의 성사에 대한 의문이고 해결책이 있는 문제다. 이 문제 때문에 현장의 사회주의자들이 파업 결의를 한다 해도 노조가 자기 계급의 우호적인 정당의 결정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냉소주의에 물들어 정치투쟁을 접는다면 당면한 개헌정국의 임박한 사태는 반동의 쿠데타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책임정당 선택이라는 정치 투쟁이 패배하게 된다면 민주주의 일반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때부터 세계는 바야흐로 계급내전의 상태로 들어간다. 우리는 그전에 전쟁에 반대하는 슬로건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이 때 노동계급이 파멸적인 국면으로 떨어져 노동운동이 파탄 나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슬로건은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반민족주의 슬로건이다. 전쟁을 막는 노동자계급의 봉기를 노동자가 직접 결정케 하자! 전쟁은 어떤 계급에게만 이익이고 어떤 계급에게만 고통인가를 증명하라!

현 법사 공화국은 날마다 성장하면서 국가의 공적인 부를 탐욕스럽게 이용하고 그 치부 수단으로써 땅을 사유화하고자 괴뢰 악법 제정 공포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괴뢰악법은 이 법을 어긴자를 처벌하지 않고 무죄방면하는 계급특혜성 특별법을 말한다. 끝발이 있으면 법은 무시된다. 이러한 불공정성 때문에 범법자들은 안심하고 투기를 할 수가 있고 법은 이들을 보호하고 옹호한다. 범법자를 보호 묵인하는 판결 때문에 노동자에게 부담을 지게하는 사법부의 비위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법조계는 좌익적 반대파가 사라져서 이른바 건국 초기 이승만 정권의 악법 제정기로 후퇴하고 있고 곧이어 야당에 대한 탄압도 도를 넘어서서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제 투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빈농과 연대한 민주적 독재를 중단하게 된다면 인민은 정권교체라는 희망을 잃게 되고 체제 전반에 장벽이 쳐지게 된다. 체제전환이 생산양식 후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당과 투쟁이 튼튼하지 못해서다. 체제전환이라는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처럼 있으나 마나하는 빛바랜 보물이 부르주아 상전들 사이에서 그림 뇌물처럼 거래하게 될 것이다. 투쟁의 굴곡 때문에 법이 전진하고 후퇴하게 된다. 이처럼 정치 냉소와 정치 혐오주의가 극성을 부린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의 희망지기 추첨을 접게 될 것이고 정치를 포기하자는 청산파가 여기저기서 득세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는 임금 노예의 깃발로 불완전한 임금 노예 세상에서 자기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부르주아지를 부정한다면 부르주아지 정치 독식 세상을 타파해야 한다. 혁명이란 토대를 억압하는 상부구조를 파괴하는 민중의 봉기와 반자본 반 전제주의 깃발을 든 민중이 벌이는 정파적 구습제도 척결 행동이다. 제도를 뜯어고치도록 투쟁을 결의하고 가두를 반제와 반파시즘 깃발로 믈들여야 민족 주체와 함께 노동 중심성이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이러한 투쟁이 힘들다 불가능하다고 주먹질을 사린다면 국회로부터 국민전선이 등장하게 되고 의회 문앞에다 극우에게 멍석을 깔아주게 된다. 단결하라!! 투쟁하라!! 한 사회에서 계급간의 억지 균형은 균열을 일으키고 프롤레타리아 진영에서 출세주의자들이 독점자본 진영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정치냉소주의는 청산주의의 대중화다. 노동자가 보기에는 냉랭한 놀부의 속셈이고 놀부처럼 다른 관념을 가지게 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대오를 파괴하는 패배주의로 귀착하게 될 것이다. 청산주의는 부르주아들의 기업경리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업가들의 경영 전폐 전략이다. 지배계급으로 조직되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악력은 계급해방투쟁에서의 승패를 좌우하지 못하게 된다. 무는 힘이 달릴수록 무는 횟수가 적을수록 부르주아 착취체제 변혁은 더디어지고 토대로부터 제기되는 생산 관계의 혁명은 더 어려워지고 그만큼 변덕스러운 부르주아지는 두 번 물리지 않기 위해 발 빠른 계산 속으로 정계와 재계에 지지자를 만들어 우익을 동원하는 진짜 쿠데타를 사주하게 될 것이다. 다 청산주의로부터 발전한 노동자 정리해고이고 기업의 구조조정이다. 청산주의는 부르주아들의 유물이지만 수정주의자들도 정세가 어려워지고 혁명이 가망성이 없어지면 카우츠키처럼 청산주의로 넘어간다. 노동자들의 혁명가 조직이 없는 정치는 수구보수 정당에게 위기를 가져다주기는커녕 상부구조에서의 반동성은 더 격하게 추동하고 관망 정국을 퇴조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염려하는 정치투쟁에서의 파국이다. 부르주아 정치 모리배들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세월호 진상 은폐와 진실규명 운동 폐기로부터 파국이 시작되었다. 파국에서 벗어날 전술을 슬로건으로 제시하라!! 청산주의가 수정주의인가 기회주의인가? 대답하라!! 노동계급이 정치변혁의 구심점을 갖게 하자는 해방투쟁의 정치투쟁 전술은 냉소주의라는 무지의 단계에 이르러서 마침내 민심이 바닥나는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너도나도 잇권 투기로 매몰되는 우익 기회주의의 전면화로 우리 운동이 도덕적 우위로부터 파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진실만이 세상을 변혁하는 힘이다. 진실을 곁에 두고 대중적 반파시즘 전선을 더 예리하게 단련하고 대중적 항쟁을 더욱 더 조직해야 한다. 경험에 의한 학습자 조직과 의식적으로 개설한 정치학습이 부재한 봉기는 사회민주주의 역사에서 나타난 조합주의의 파편이고 단편적 쟁의행위일 뿐이다. 그것이 가르치는 바로는 봉기 그 자체에 머물러 러다이트 운동 직후처럼 기회주의로 빠지게 될 거라는 점이다. 우리의 투쟁의 목적은 국민의회를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정치의식과 정당으로 의회 내에서 파시즘 반대파 좌파 의원 그룹을 형성시키는 것에 놓여 있다. 우리의 봉기는 내각제 파괴와 국민군 당파심을 빙자한 행정독재에 맞서 상부구조를 파괴하자는 상부구조 붕괴의 대장정이다. 이러한 전술을 놓친 채 싸우게 된다면 국민 이권주의로부터 신자유주의로까지 항거투쟁을 섭렵한 법검 정부에 의해서 반파시즘 사상이 결정화되지 않고 무장해제 되어 백군에게 무상으로 의회로의 직접 진출로를 열어주는 청산주의로 반동 모리배들에게 의회선거 승산의 깃발을 넘겨주게 될 것이다. 밀정이 장관이 되는 시대에 공안 검비가 국회의원 하는 시대가 과연 노동자 세상인가? 법료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독점자본의 힘에 의해서 관습을 뜯어고치는 엘리트들이며 국가 관료들이다. 관료주의와 맞서 투쟁하라!! 우리는 먼저 의석을 얻고자 한다면 사회민주주의자를 과학적 사상으로 단련시키고 강령의 의식성으로 대중 전선을 결사하게끔 활동가들을 사상운동으로 단련시켜 정견을 만들어내는 노정에서 단결의 주체가 되는 이데올로기 전사 결집체 활동가당을 먼저 결당하여야 한다. 노 농 학 부문에서 현실 문제를 조사활동으로 파악하고 정책의 과학적 결론을 이끌어 낼 사람을 준비하여 사회문제를 각양의 정치 상황에 맞게 만들어 제출하고자 노동계급의 선진부위를 조직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을 부르주아지 이데올로기 영향권으로부터 차단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으로 통일된 노동운동의 정견을 갖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반파시즘 투쟁으로 국회 진출로를 열어야 한다. 우리는 시인이라도 조직하고 우리가 찾는 전술이 적접로인지 우회로인지 결정하고 그 투쟁을 결의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지금의 국짐당 위주의 언론선전은 무척 불편부당하다. 국짐당 집안싸움이더라도 몇 개의 펴즐로 풀어가는 잡담과 당내분규는 노동자에게 이러한 정치적 냉소주의를 불러오게 할 수 있어 서푼짜리라도 국민전선의 대중화는 매우 위협적이다. 당면한 위기를 돌파할 전술로써 정치투쟁의 과정을 열매로 맺을 투쟁 의제를 토의 분석하고 슬로건으로 제시하라! 국민전선은 저들끼리 싸우면서 노동자와 무산자로부터 권력의 정통성을 획득한다. 그들의 조직화의 무기는 개인적인 신상 발언과 권력 찬탈에 성공한 법료 정변의 국면에서 놀음대장을 제비뽑기하듯 각종의 선거운동시 사견 간의 모순과 논공행상 차이로 발생하는 사적인 명예직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며 반대편을 궁지로 내모는 것이 전부다. 이것의 성사로 출세는 줄세우기 전투이다. 이 프라이버시 연줄 승급 전투를 떠벌이면서 자신만이 국민당군의 장수라고 우겨서 땅을 따먹기라도 하듯 명망성의 영전 앞에 간판 세우기를 자청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뻗어나는 적자생존의 기로에서 인기몰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탈출 구명복 찾기와 당선권들기 도박처럼 권력 실세 연줄 잡기를 쉬지 않고 수행하고 있어 저들의 속내에 따라 정치권이 들썩거린다. 뉴스 머리에 비쳐질 정치 배우 꼭지 차지하기식 적자생존의 꾐수가 얼마나 인기 영합적인지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시이다. 신인 정치 배우 콘테스트에 인민의 온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들의 신인배우 선거방식은 반 인민 정권의 친일 사대 핏줄 찾기에 다를 바 없으며 당직 인선은 사다리 놀이를 하면서 승자독식을 그대로 내비치는 유산계급 적통성 채우기일 것이다. 쌈지 주머니에서 썩은 내가 넘치고 저 멀리 퍼져나간다. 그들이 조직 폭력배들의 형님 줄 세우기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우리가 어둠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공통된 투기 의지의 원천인 소유욕 놀음 즉 사적소유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토지국유화 강령에 이어 금융자본 국유화를 주장하고 조만간 관철시켜라! 지폐를 그만 찍어내고 원금과 이자를 국유화하라! 저들이 보여준 정치 권력의 목적은 국유화된 국가재산을 얼마나 거리낌 없이 가져가고자 민주 국가를 얼마만큼 무력화시켜 정권 도박에서 승리를 담보로 민영화 판돈에 탐닉하고 민영화 도박에 몰닉하여 국유재산 담보물 잡기를 선거인기몰이로 적용하고 뒷배로 몰수한 담보물을 헐값에 가져가기와 국가 자산 팔아먹기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저 부르주아지의 그 허황된 꿈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투쟁하라!!

정치 도박을 끝장내려면 정치 도박을 종식시킬 토지국유화강령의 제기와 생산수단 국유화 그 대중적 제출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은 도박장이 된 정계에 대한 외면과 묵인을 끝장낼 각개의 전투에서 토지국유화강령을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 토지국유화는 경작의 권리이자 농업인 주거의 권리이다. 이에 비하여 민영화는 국민당군들이 사적인 인연으로 벌이는 매각 경매 대장에 줄서기이다. 국가기관이 아닌 가신들의 잇권 챙기기이다. 80년대 양김 시대 반파시즘 투쟁에서 민주주의 시민운동이 서막에서 승리하자 보수 야당이 나는 동교동계 너는 상도동계 갈라서기 계산하며 정권을 쥐기 위해 펼쳤던 양육강식의 부르주아 정계 사무관 줄세우기와 지역 감정으로 편가르기 하는 등의 거물급 가신을 선거명부에 목줄 채우기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당군은 출세주의자들이고 그 권력의 나팔수들의 당은 제 잇속으로 결합되어져 의석을 탐하는 사당화에 투기한 정치 모리배들이다. 법서사와 친윤 친이 등의 당나귀 파나누기 싸움은 총선을 까마득히 앞두고 벌이는 계파싸움이며 마치 장외선거를 연상케한다. 반민중 친제국주의 가신 세력이 양김 시대처럼 반 민족주의 깃발을 든 전쟁도발 도반들이다. 그들에게 국유화란 국가의 무형 유형의 공동자산을 팔아넘기고 그 댓가로 가신 집합 모리배들에게 잇권을 챙기는 것이고 돈 가진 자들에게 국가의 재산을 넘겨주어 큰손 투기꾼으로 키워주는 세속주의 물들이기인 것이다. 저들의 국유화는 종국적으로 사유화를 강행하기 위해 벌이는 국가 분할통치 절차이고 국유재산을 지켜서 애국하려는 인민들을 패배시키는 난봉꾼들의 꽃패 갈라먹기이며 가신 우선의 집단 이기주의이며 법비 정부의 공정국가라는 국가정체성에 정통성 시비로 분열시켜 정변을 유도하는 정치협잡꾼 모리배들의 난동꾼 추종에 대한 의기투합이며 그 앞잡이들의 난장판 만들기일 것이다. 이같이 반민족적 사유화의 깃발인 국가재산 도적질과 공공 자산매각과 공유경작지 해체하여 노략질로 사들여 챙기는 사적 출세욕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 노동자들은 승리를 장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계층을 전술적 동맹군으로 묶어 세워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와 농민이라는 생산적 가난뱅이 동맹이 필요한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최고강령이 사적소유로 기울여진다면 승리는 백일몽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우리는 가신정치와 법검선비 난동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의 경제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국민당군과 서로 일맥상통하여 국민당군과 사고가 같아진다면 잇권싸움 즉 사적인 이해 전투밖에 남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무기로 삼고자 경제투쟁을 강화한답시고 국민당파와 국민전선의 싸움에서 주고받는 국유지 분할을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현장에 가져와 재현해서도 안 된다. 국유화투쟁에 목숨을 걸어라! 그것은 민주화된 국가가 집권을 성공하게 된다면 장애인이나 청소년들에게 노동을 장려하기 위한 공익적으로 경작하는 공음전의 토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 좌파가 국유지매각 사유화주의와 손잡게 해서는 안 된다. 정의당은 부르주아 당이지만 혁명은 아닐지라도 노동을 존중하고 있으며 노동을 통한 당세회복을 바라는 혁신계 편이 내부에 있다고 추정되고 있기에 진보라고 불리워질 수 있지만 당내 현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의회투쟁과 당내 투쟁에 관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사는 길은 의회주의를 거부하고 민영화와 실정에 맞서 장외투쟁을 선포하고 파업으로 해고된 동지들을 포용하는 것이다. 노동을 말로만 존중한다는 것은 우익 기회주의라 아니할 수 없다. 농성장도 찾지 않는 매정한 당파심은 부르주아 편드는 학생회 출신의 정치 계모임이 정의라는 당명을 둘러썼을 뿐이다. 만약 진보좌파가 정의당을 생각해준다면 정의당 내의 진보파 혁신파 노동파 현장파가 생기도록 당내의 반노동 적폐 청산에 임하도록 엄격한 비판을 가해야 하고 원내정당을 버리고 장외투쟁 정당을 선택하라는 충고를 날려서 정공법으로 공안정국을 앞에 두고 당원들의 열정적인 투쟁으로 전쟁 화근을 가라앉히는 것일게다. 이 투쟁에 힘입어 군소할거의 당세를 통합할 새로운 정치가 후보를 마련해야 하지만 이들에게 정치라는 직업을 만들어주고 의석을 상속해 나갈 정당이라는 인식이 퍼져있는 관계에서 직업적 정치인 정체성에 아량을 베푸는 노동자와 민중이 있기나 한단 말인가? 오로지 자신들의 투쟁으로 난세를 돌파하고 노동자 정당화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만 건강한 투쟁이 진보로 성숙할 것이다. 그 당의 후보 중에서 즉 노동 현안의 사회주의화 문제에 대해 혼신의 힘과 정력적 노력 그리고 신념에 찬 투쟁을 쏟을 정파가 과연 대한민국 정의당 안에 있기나 하는가 말이다? 민노당조차도 어렵다고 저버린 기회주의자들에게서 무슨 혁신을 바라겠는가? 대중 정당이라기보다 제국주의 부르주아 정당이 아니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정의당은 노란색을 버리든지 인민의 지지를 버리든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혹여 법서 저들이 투쟁을 벌이며 갖고 있는 역세권의 반 과학을 과학적 진술로 진짜배기 투기 정체성을 폭로하여 파시즘의 어두운 진면목을 지지자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정의당에게 노동자당 예우처럼 대민 봉사와 대중운동적 기여를 요구하라!!

노동 계급에게 민주노총은 그냥 경제주의 직업 단체일뿐이다. 혁명을 주장하려면 노동좌파를 재생산해야 하고 사회혁명가를 진보좌파에 심어주어야 한다.
경제투쟁에 쫓기어 경제주의자 동맹을 만들려 하지도 말라! 매달 매주 매일 매시 자신들의 노동계급 조직 집단방어를 위해 집회 시위 결사를 계획하고 노조와 노민추 그리고 노동동맹을 조직해야 한다. 그 노동세력화 계획의 정립에 따라 붉은 깃발과 붉은 노동 군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민주주의 혁명의 선봉 부대로서 노동해방 군대의 결성과 계급동맹으로 저 모리배들과 결기 있게 전투를 치르는 정치투쟁의 담당자이고 경제투쟁의 선도자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의 근저가 이데올로기 투쟁과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투쟁에 진보좌파가 사회주의자가 함께 하여야 한다. 이들의 투쟁이 성과를 내려면 반드시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반 사회주의법 국보법과 부르주아 정당법을 폐지시켜야 한다. 정당은 만인의 기본권이며 인권선언적 자유이다. 반자본 정치투쟁이란 활동가들의 정치결사체와 그들의 반부르주아 사상투쟁 그리고 노동당에서 쁘띠 부르주아지의 터전을 없애는 것이 당의 민주적 통제이며 이것의 실천은 당에서 기회주의자들의 축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정군이란 이것을 의미하고 그것의 실현과학은 노동조합운동에서 한발 더 나아간 혁명적 노동자 동맹 즉 노동자계급의 단결 투쟁 속에서 무산 과학에 입각하여 해방동맹이 뿌리가 내릴 수 있는 대중정당의 등장이 열쇠다. 해방동맹의 참모부격인 정치결사체가 사회계급의 갈등과정에서 파생되는 사회문제를 투쟁강령으로 도출하고 전술적 슬로건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노동자계급에 의한 코뮌적 강령의 도출은 곧 변혁의 깃발을 든 대중투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주택문제와 집단적 농지부족 해결 문제의 상관관계를 표현하는 노농균형 연대 정책의 강령화 등등 매일의 사회적 계급 문제에 대한 투쟁방침의 정립과 혁명 정강 선포가 전술적 선언의 순례자이다. 그 임무를 부여받은 선진노동자가 혁명적으로 각성하여 결사하는 노동자당과 전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동맹의 응결된 정책 강령에 의해서 임무를 부여받은 참모부의 정치행진 대오가 가두에서의 전위조직이다. 그것의 현상 실체는 노농총동맹일 것이다. 지금 시급히 요구되어지는 것은 장외 국회의원 대오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노농총동맹의 민주적 결사와 항전 의지의 체계화 즉 붉은 노동자 군대의 창설이다. 붉은 군대의 주도적 활동가 조직인 혁명적 노동자 동맹과 그 당은 마르크스의 코뮌 깃발과 레닌의 정치투쟁 기반인 사회민주당의 민주주의 혁명의 정립과학을 손에 움켜쥐어야 한다.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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