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좌파”라
부를수 없는 이유
생존을 위한 진보신당의 몸부림이 안쓰럽다. 작년말부터 통합진보당과의 본격적인 진보경쟁을 선언하고 보다 ‘좌’에 가까운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나 일이 뜻대로 안되는것 같다.
만 3년이 되도록 분당의 ‘태생적 원죄’에서 벗어날 새로운 무엇을 보여주지 못한채 또다시 분열을 선택한 ‘좌파’의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다행히 홍세화씨가 진보신당의 구원투수로 나섰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비전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좌파’가 새 정치프레임 없는 생존본능의 의기투합으로 비쳐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한국‘좌파’의 실상
한국만큼 좌파개념이 혼용되는 곳은 없다. 김대중,노무현 같은 전직대통령들도 ‘좌파’로 지칭되고 보수계층이 ‘좌빨’로 부르던 전 민주노동당도 일각에서는 ‘우경파’로 비난되기도 했다.
현재 진보진영내에 오래동안 ‘좌파’로 불리운 소수파들이 있지만 그들도 엄밀히 볼때 좌파라 한데 묶어 부르기는 곤난하다. ‘좌파’로 부르는 두 부류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유럽복지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 ‘진보가치의 다양성’으로 ‘외연’을 확대하려는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노동자계급성’,‘사회주의’를 막무가내로 내세우며 폐쇄적인 사고방식과 돌발적 행동을 일삼는 세력이다.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좌파’그룹은 민주노동당 탈당 후 평등,평화,생태,연대를 새로운 ‘가치’로 내세웠으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이고도 시급한 진보적 가치중심의 세력이라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불충분하다. 단지 ‘좌파’로 분류되는 다양한 세력들이 각각 내놓은 화두들을 한데 모아놓은데 불과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좌파’일부가 주장하는 ‘녹색사회당’건설안을 보아도 핵발전축소,에너지전환같은 정책을 장황하게 열거는 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보수정당과의 정책적 대립각을 얼마나 세울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좌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노동자이익 중심의 새로운 정당건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대개는 사회당보다 못한 폐쇄적인 써클에 불과하고 게다가 노동조합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색깔도 무늬도 제각각인 분파들이 기형적인 집합을 이룬 것이 한국‘좌파’의 현 주소다.
한국‘좌파’가 기형화된 것은 서유럽의 좌파를 롤모델로 한데 원인이 있다.서유럽은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여러 차례 민주주의혁명을 단행해 서방식 민주주의의 완벽한 기틀을 확립하였으나 한국은 고작 방금 절차적 민주주의를 경험했을 뿐이다.
한국은 사실상 오랜기간 독재와 반공이데올로기의 지배로 좌익이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고 좌파의 이념이 구현될 사회적 전제조차 아직 구비안된 상태이다.
한국사회의 중심의제
진보신당대표 홍세화씨는 ‘좌파’의 이념인 평등,평화,생태,연대를 실천해 “자본권력과 재벌국가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자본구조를 개변하는 실천투쟁으로 국민에게 새롭게 다가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사회의 중심의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은 없고 유럽의 가치관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수 없다.
과연 한국사회의 근본문제를 자본,재벌권력의 문제로만 봐도 될까? 서유럽은 한국처럼 외부의 영향으로 좌절되거나 억제당한 적 없이 장기간 자본주의 발전의 정상적인 길을 걸어 왔다.그러나 한국은 외부의 직접적인 간섭하에서 비정상적인 길을 거쳐 발전해왔다. 서유럽의 가치관으로는 한국사회의 근본문제를 밝혀낼 수도,해결할 수도 없다.
한국의 자본은 외세의 도움이 없이는 순간도 버티기 힘든, 외세에 기대어 예속과 분단체제의 그늘아래서 생존하고 있다. 비정규직,양극화,청년실업을 양산하는 자본권력은 보면서도, 한국경제의 수족을 얽어매고 이윤경쟁의 무한질주만을 독려하며 우리 국민을 희생시키는 실질적인 지배자인 미국을 보지 못하는 것은 대단한 착시이다.
한국정치의 의제를 바로 정하자면 미국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한다.한국사회에 뿌리내린 한미관계를 무시하고 자본권력과 재벌구조의 개혁만으로 사회가 개변되고 민중의 삶이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것은 시베리아 동토대에서 초원을 꿈꾸는 것과 같다.
얼마전까지도 한국사회의 중요의제로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던 무상급식,비정규직,청년실업 문제가 한미FTA비준처리로 단번에 뒤전으로 밀려난 사실을 놓고 봐도 한국정치의 중요의제가 우리 주권을 쥐고 흔드는 미국과의 관계문제라는 것을 알수 있다.
사실 이 지구상에 한국만큼 주권의식이 빈약한 곳은 없다.과거 미국에 추종하던 나라들도 독자적인 길로 나가는 오늘, 유독 한국만이 미국을 위해 고통을 떠맡아 그네들이 원하는 것을 섬겨 바치기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의 연설문조차 미국로비업체에 맡기는 한심한 형편이다.진보라면 응당 이같은 문제부터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좌파’가 말하는 사회주의도 좋고, 사회민주주의도 좋지만 대미주권수호도 안된 한국사회에서 그것이 실현되려면 아직 멀기만 하다.
외국자본에 끌려 다니는 사회에서 특권과 반칙은 어떻게 근절하며, 미군주둔비와 군사비로 막대한 자금이 탕진되는 상황, 전쟁위험이 항시적으로 사람들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복지는 어느 정도 가능할까. 그런데도 예속과 분단으로 인한 총체적 질곡은 외면한채 자본권력만 극복하면 만사OK라고 하니 순서가 틀려도 너무 틀린 것이 아닌가.
물론 ‘좌파’가 말하듯이 시대는 변했다.인구,에너지,환경,전염병 문제 등 전지구적 의제가 출현하였고 동아시아 질서를 견인하는 주변국들의 역할도 강해졌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의식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우리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그들의 수법은 더 악날해졌다. 시대의 변화를 운운하며 남의 가치나 모방해 대안체제논쟁만 일삼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이고 망상이다.
‘좌파’는 다른 이들에게 사고전환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기본의제를 애써 피해가려는 자신의 삐뚤어진 사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진정 좌파라면 자가당착에서 벗어나 미국을 똑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좌파라고 부를수 없는 이유
좌익,우익이라는 개념은 18세기 프랑스 부르주아혁명 시기 의회를 보수적인 당파와 진보적인 당파로 양분한데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좌익이 새것에 대한 진취성,행동의 급진성과 전투성,변혁에 대한 지향을 추구한다면 우익은 낡은것의 보존유지,변혁의 부정을 추구한다.
오늘에는 좌익을 민중의 편에 서서 민주주의와 반제,평화,자주를 지향하는 세력으로 보는 반면 우익은 지배계급의 편에 서서 현존체제와 통치방식을 고수하는 반민주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인 세력으로 보는 것이 통례이다.
이에 비춰보면,한국‘좌파를’ 과연 ‘좌익’이라 부를수 있을까.
우선 ‘좌파’의 반제적 입장이 불투명한것이 문제다.반제적 입장은 좌익의 상징적인 이념으로,좌와 우를 가르는 척도이기도 하다. 한국‘좌파’는 더더욱 ‘반제’,‘반미’입장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나 ‘좌파’는 초기부터 반제반미운동을 특정세력의 구시대적 발상인듯이 왜곡하며 계급투쟁과 억지로 대립시키면서 계급투쟁일면으로 좌익운동을 이끌어갔다. ‘미군 철수’,‘반미’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친북’,‘종북’딱지를 들이대는 저열한 작태는 ‘보수’만이 아니라 좌파도 지겹게 보여주었다.
한국‘좌파’는 좌파고유의 새것에 대한 진취성도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 ‘좌파’처럼 ‘진보가치의 다양성’으로 진취성을 자화자찬하는 세력도 드물다.그들이 내드는 진보가치를 접하면 당장이라도 한국이 유럽의 복지선진국대열에 합류할것 같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양한 ‘가치’만 있을뿐 그것을 실현할 ‘힘’이 없다. 그들은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할 동지들도 ‘자주 파’,‘패권주의세력’,‘친북세력’,‘중간층’등 갖은 딱지를 붙여 놓고 동지들에게 등을 돌리며, 스스로를 폐쇄적인 분파로 만든다. 최근에는 정규직 노동자도 중산층화되었다고 규정하며 진보정당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비정규직,청년실업자를 지반으로 새 당을 내오려는 발상도 보이고 있다.
수권정당,대안세력으로 발돋음할 용기도 없이, 가치이념에 매달려 불임정당으로 주변화되고 우경화된 분파세력을 진취적인 ‘좌파’라고 볼 사람은 없다.
민중의 지향에도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민중의 이익과 지향을 무시하면 그것은 벌써 좌파가 아니다.
민중은 지금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사람이 살수 있는 정상적인 사회를 원하고 있다.정상적인 사회가 되어야 진보도 보수도 제자리를 찾을수 있고 복지사회도 만들수 있다. 외세와 그 추종세력의 탐욕과 폭압,수탈의 고리를 영원히 끊어버리고 자주권을 행사하기 전에는 한국에서 그어떤 진보도 기대할수 없다.
그런데도 좌파는 자주권확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방기한 채 유럽식 복지사회의 홍보대사로 전락해 대중의 정력만 소모시키고 있다.보수와의 전면 대립이 아니라 한국정치의 변두리에서 안식처를 찾는 이들을 누가 믿을수 있을까. 과연 좌파라 부를수 있을까.
한 ‘좌파’인사는 십수년 ‘좌파’로 살아온 게 아까워서라도 좌파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허나 그가 십수년 대중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자신은 어떤 발전을 했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살아 온 시간이 아쉬워 ‘포기’할 수 없다면 그는 좌파라 불리울 자격조차 스스로 저버린 셈이다.
민중은 지금 ‘좌파’가 진정으로 한국진보운동의 주체세력,좌익세력으로 바라볼수 있게 철저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사회변혁운동에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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