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콤비정규지부에 대한 9월 11일 중노위 조정에 부쳐 >
중노위는 ‘위장도급,불법파견’이란 낡은 사슬을 끊어야
-중노위가 사용자성 부정하면 ‘불법파업-구속수배-손배가압류’ 악순환 반복돼
하나의 유령이 증권가를 배회하고 있다. ‘사용자’라는 유령이.
노동자들에게 작업비품을 제공하고, 작업지시를 하고, 근태관리를 하고, 노동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지불하면서도 이 사용자는 자신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실체가 없는 유령이란 말인가? 아니다.
코스콤비정규 노동자들은 지난 20여년간 ‘(주)코스콤’ 간판이 달린 사무실에서 (주)코스콤이 제공한 컴퓨터와 각종 공구, 사무비품을 이용해 일을 했으며, ‘(주)코스콤’이란 글씨가 선명하게 찍힌 명함을 돌리며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묵묵히 일해 왔다. 하루 12시간 일하고도 한달에 고작 120만원 받으면서 말이다. 전산업무의 특성상 추석연휴 특근으로 고향도 못 가는 신세지만, 그 흔한 명절 보너스 한 번 받아보지 못했지만, 코스콤 직원인 게 자랑스러웠고 정규직-비정규직이란 구분은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비정규법이 시행되면서 보여진 사용자들의 행태는 비정규노동자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장비를 같이 못 쓰게 하고, 업무를 불합리하게 구분했다. ‘위장도급-불법파견’을 진성도급으로 위장하고 차별시정을 피해가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고, 사용자들은 ‘나는 이제 너희들의 사용자가 아니다. 너희들은 코스콤 직원이 아니다’라며 발뺌하고 있다.
(주)코스콤은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해 직접 보직 임명, 전직, 작업장 배치 등을 해 왔다. 또, (주)코스콤 사내 전산망인 ‘나누미’로 근태관리까지 해 왔다. 이런 상황인데도 (주)코스콤이, 이종규 사장이, 사용자가 아니라는 게 말이 되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허망한 짓일 뿐이다. 코스콤 사측은 마치 모든 일을 저질러 놓고 실체는 보이지 않는 ‘유령’이 되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용자’의 실체가 너무 적나라하게 규명되고 있다.
이제, ‘사용자’라는 유령의 실존을 인정하고 실체를 확인할 때가 됐다.
공은 중앙노동위원회로 넘어갔다.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는 지난 5월 19일 노조를 설립한 후 30여 차례 교섭 끝에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쟁의조정신청을 했고 오는 9월 11일 본조정을 앞두고 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주)코스콤이 ‘위장도급-불법파견’을 진성도급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중노위도 이러한 정황을 명확히 알고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콤비정규지부가 진행한 30여 차례의 교섭에서 교섭상대방으로서 사용자측 자리에 (주)코스콤 사용자들이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중노위가 잊지 말기를 바란다. 또, 지난 7월 3일 증권노조(코스콤비정규지부)와 체결한 기초협약서에 코스콤 이종규 사장의 서명날인이 돼 있다는 사실과 코스콤이 도급업체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증전ENG'의 사장이 (주)코스콤의 현재 총무팀장이라는 사실도 중노위가 간과하지 않기를 거듭 당부한다.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노동부가 올해 7월 발간한 정책보고서에서 “외관상 사내하도급의 형식을 취하였으나, 실제로는 원사업자가 하청근로자를 직접 지휘․명령함으로써 위장도급-불법파견의 문제가 발생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때때로 ‘사용부’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노동부마저도 ‘위장도급-불법파견’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고, 노동부 서울남부지청도 지난달 19일 코스콤의 불법파견에 대해 검찰수사를 요청한 마당에, 중노위가 ‘코스콤의 사용자성’을 부인하리라고는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동안 현대자동차, 하이닉스-매그나칩, 기륭전자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수백, 수천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에 맞서 투쟁하다가 구속되고, 해고되고, 손배가압류를 받아 왔다. 정부 감독기관과 사법기관이 ‘불법’파견에 대해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지 않으니 결국 비정규노동자들의 파업이 ‘불법’으로 변질되고, 나아가 해고되고 수십~수백억원의 손배가압류를 받게 되는 것 아닌가?
우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중앙노동위원회가 계약서 운운하며 형식논리에 빠지거나 정치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심판자,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길 바란다. 만약, 중노위가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노동자들이 역사적인 투쟁의 심판자로 나설 수 밖에 없다. 중노위의 잘못된 판단으로 ‘불법’의 딱지, ‘손배가압류’의 압박, ‘구속’의 사슬이 코스콤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면 8만 사무금융 노동자들의 이름으로 강력히 응징할 것이다. 부디, 중노위가 9월 7일 본조정을 11일로 연기한 것이 ‘장고악수長考惡手’가 아닌 ‘옥동자를 낳는 산고産苦’이길 바란다.
2007. 9. 7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