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왜 실패하는가 _ 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2월 21일자) 글입니다.

작성자
사회민주노동당
작성일
2022-03-07 06:02
조회
125
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2월 21일자글입니다.

  

진보는 왜 실패하는가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지배계급은 지난 여러 대선에서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골라 투표해야 한다고 민중을 다그치더니 이제 차악이라도 고르라고 한다지배계급이 내놓은 정당과 후보가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차선조차 못 될지라도 그 가운데 하나를 찍음으로써 현존 정치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동참하라는 것이다이런 선거보이콧 운동이라도 하고 싶다.

 

이런 불편한 심정을 잠시 내려놓고 곰곰이 인과관계를 짚어 본다촛불혁명으로 낡은 수구보수 정치세력이 궤멸되기를 기대했는데 어째서 그것이 되살아나 집권이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떠올랐는가또 수구보수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을 발판으로 집권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권은 어째서 차선조차 아니고 두 악 중의 하나로 전락했는가.

 

수구보수 정치세력이 부상한 원인의 하나는 민주당 정권이 적폐를 청산한다고 하면서도 수구보수 정치세력을 협치의 파트너로 삼았기 때문이다그들의 수장인 두 대통령은 감옥에 가고 그 정권에 한 역할을 했던 인사들 여럿이 숙청됐으나그 수구세력 자체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을 통치하는 동반자였다그렇게 보수 양당 독점체제가 유지돼야만 노동자·민중이 정치권력을 쟁취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다른 한 원인은 민주당이 주류를 교체해 장기집권하고자 했지만 실정으로 인해 수구보수 세력을 비주류 세력으로 계속 묶어두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유주의 정권은 전통적으로 자신을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으로 표방해 왔다그러나 그들은 독점자본과 중산층의 대변자였을지언정 중산층과 서민특히 서민의 대변자였던 적이 없다그들은 매번 재벌의 이익을 옹호했고신자유주의를 적극 도입했다그러니 기층 노동자·민중달리 말해 서민층은 선거 때에는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그들이 집권한 후에는 배반당하고 되돌아선다문재인 정권의 경우 그 배반이 극히 두드러졌다그로 인해 민중은 이구동성으로 문재인 정권의 배반과 배신을 규탄하고 있다문재인 정권은 심지어 자신을 진보세력이라고 포장했기에 배반감은 더욱 심하다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사실 과거에 민주화운동 한 것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출세한 보수정치세력이며그것도 아주 위선적인 정치집단이었다이로 인해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켰다그 반사효과로 사멸직전에 처한 수구보수 세력이 기사회생해서 차기 정권을 넘보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진보를 사칭하는 가짜 진보가 패퇴하고 있으면 진짜 진보 정치세력이 약진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2~3%대를 오르내리고 있고 김재연 진보당 후보는 여론조사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그 원인은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들은 가짜 진보는 아닐지라도 참다운 진보가 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예로 심상정 후보를 보자그는 며칠 전 광주 유세에서 김대중·노무현의 계승자로 자처했다정의당은 그동안 민주당 2중대라고 비판받아 왔는데그것이 이 정당의 정체성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그가 두 거대정당 후보에게 노동의제가 없다고 비판하면서 내놓은 것이 주 4일제다이렇게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창의성이 높아진다고 한다좋은데그러면 이것은 누구의 이해와 요구인가공기업과 독점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노동귀족들의 이해와 요구다비특권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주 4일제는 선반 위의 떡이다주거난민이 가득한데 주택정책은 무주택자 내 집 갖기가 아니라 세입자 안심거주 보장이다문재인 정권처럼 무주택 민중은 내 집 갖기를 포기하고 영구히 세입자로 살게 하되 세입자의 권리를 챙겨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심상정 후보가 문제이고 정의당은 괜찮은가정의당은 젠더 문제와 기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먹고사는 데 절박한 걱정이 없는 중산층에게는 기후 문제나 젠더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다가온다그러나 기층 노동자·민중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그보다 훨씬 절박하다정의당은 또 노동자를 차별받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시민으로 호명하자며 계급성을 희석시키고자 한다그렇다면 심상정 후보만이 아니라 정의당 자체가 문제다심상정 대신 노회찬을 소환한다고 이 점이 달라질까그에게서도 의회주의와 개량주의가 진보정당의 정체성이지 혁명과 변혁이 정체성이 아니다의회주의·개량주의 진보정당에 대한 주 지지층은 기층 민중이 아니라 10%의 상층 중산층과 노동귀족층까지 포함한 20%의 중산층이다.

 

진보의 실패는 진보의 분열에도 한 원인이 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진보정당들이 의회주의·개량주의 노선을 취해 온 이상 실패는 필연적이다이념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개혁·개량을 추구하는 것인데이 개량은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자본주의를 살리는 데 우선권을 내주지 않을 수 없다위기에 처한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를 택하면 그것을 받아들인다지금처럼 장기대불황에 처하면 양적완화와 무제한적 재정팽창 및 4차 산업혁명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이리해서 보수정권의 이중대가 될 수밖에 없다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그렇게 해서 쇠퇴하고 있다.

 

이때 표방하는 이념을 사회주의로 교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비록 사회주의를 표방하더라도 중산층을 지지기반으로 젠더 문제나 기후위기를 주요 의제로 삼으며 혁명적 사회변혁을 추진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의 왼쪽 날개로 귀착한다이런 좌파 또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해답은 어려운 데 있지 않다진보는 노동자·민중 가운데 기득권적 부분이 아니라 현 체제에서 소외돼 있는 기층 노동자·민중을 대표하고 대변해야 한다그때 진보는 주·객관적 조건이 성숙돼 사회주의 혁명으로 되든 주·객관적 조건이 덜 성숙돼 민주주의 혁명으로 되든의회주의 개혁 노선이 아니라 혁명주의 변혁노선을 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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