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버마, 일각에서 제기된 자작극 의혹을 밝힌다.

작성자
사회민주노동당
작성일
2022-12-19 00:04
조회
81
1983 버마
강진욱 지음 | 박종철출판사 | 2017년 06월 10일 출간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정치/사회 > 정치/외교 > 각국정치 > 기타나라정치
『1983 버마』는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을 다루고 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 수도 랭군(현 양곤)에 있는 ‘아웅 산 묘소’에서 폭탄이 터져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외교사절을 포함한 한국인 17명과 버마인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6개국 순방길에 나섰다가 첫 방문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장세동 경호실장 등은 숙소에서 늦게 출발해 사건 당시 현장에 없어 화를 면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건 직후 이 사건이 “북괴의 소행”임을 주장했고,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귀국한 뒤 비상경계태세를 발동했다.

전국적으로 ‘북괴 만행 규탄대회’가 열렸고 보복과 응징 분위기가 고조됐다. 버마 정부는 사건 발생 후 3주가 지나도록 ‘북한’을 특정하지 않은 채 ‘코리언’이 범인이라는 입장이었다.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된 ‘강민철’은 처음에는 자신이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으나, 남한 정부 관계자들과 만난 뒤인 11월 3일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고 진술을 번복했고, 버마 정부는 그 다음 날 바로 북한 외교관에게 출국을 명령했고 북한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강민철’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기로 감형됐다. ‘강민철’은 2008년 옥중에서 사망한 것으로 돼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책은 버마 사건과 관련하여 이제까지 한국 정부가 발표하고 여러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데서 비롯되었다.

저자소개
저자 : 강진욱
저자 강진욱은『연합뉴스』에 민족뉴스취재본부가 있던 호시절에 북한부와 남북관계부에서 7년 정도 근무했고, 그 전후 몇 년 외신부에서 근무하면서 분단 체제의 모순을 제대로 깨달았다. 대학에 입학하던 1983년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이 일어나고 대학을 졸업한 1987년 김현희 사건이 일어난 것 역시 이 땅의 모순에 눈뜨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 사건을 통해 깨달은 이 땅과 세계의 모순에 대한 고민은 유전자처럼 육신을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아웅 산 묘소 사건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언론계 대선배를 북한부 기자 시절 찾아간 것이나, 30여 년이 지나 이 사건에 대해 책을 내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2015년 5월 충남 홍성 주재 기자로 발령을 받았고 6개월 뒤인 그해 11월부터 안양 주재 기자로 있다가 2017년 6월 1일 월간부로 발령을 받았다.

목차
● 추천사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 책 머리에
● 제1부 1981∼1982년 전두환 대통령 시해 모의 사건들
● 제2부 아웅 산 묘소 폭파 사건의 전조
● 제3부 전두환 정권의 자작극 의혹
● 제4부 강민철의 말 한마디로 북한 소행임이 밝혀졌다?
● 제5부 버마 사건의 마무리를 위한 ‘다대포 공작’, 이어지는 ‘늑대 사냥’
● 제6부 전두환 정권의 남북회담 속셈과 ‘간첩선 공작’
● 제7부 버마 감옥에 갇힌 강민철, 한국이 관리했다
● 제8부 강민철은 북파공작원이란 말인가?
● 제9부 네 윈의 버마와 미국, 북한
● 제10부 여록
●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 일지
● 후기

출판사 서평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 수도 랭군(현 양곤)에 있는 ‘아웅 산 묘소’에서 폭탄이 터져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외교사절을 포함한 한국인 17명과 버마인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6개국 순방길에 나섰다가 첫 방문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장세동 경호실장 등은 숙소에서 늦게 출발해 사건 당시 현장에 없어 화를 면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건 직후 이 사건이 “북괴의 소행”임을 주장했고,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귀국한 뒤 비상경계태세를 발동했다. 전국적으로 ‘북괴 만행 규탄대회’가 열렸고 보복과 응징 분위기가 고조됐다.
버마 정부는 사건 발생 후 3주가 지나도록 ‘북한’을 특정하지 않은 채 ‘코리언’이 범인이라는 입장이었다.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된 ‘강민철’은 처음에는 자신이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으나, 남한 정부 관계자들과 만난 뒤인 11월 3일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고 진술을 번복했고, 버마 정부는 그 다음 날 바로 북한 외교관에게 출국을 명령했고 북한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강민철’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기로 감형됐다. ‘강민철’은 2008년 옥중에서 사망한 것으로 돼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과 관련된 개략적인 내용은 위와 같다. (흔히 ‘아웅 산 테러 사건’이라고 하지만, ‘아웅 산’은 버마의 영웅적인 독립운동가이며 사건이 벌어진 곳은 그를 기리는 ‘아웅 산 묘소’였다.)
이 책은 위의 사건과 관련하여 이제까지 한국 정부가 발표하고 여러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 의문을 제기한다.
필자는 사건이 벌어지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출판된 책자들, 특히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었으며 대통령과 함께 폭파 당시 현장에 도착하지 않아 목숨을 건진 장세동, 현장에 있었던 외신 기자, 순방 일정을 기획하던 외무부장관이었다가 사건 당시 고사에도 불구하고 뜻밖으로 안기부장 자리에 있었던 노신영,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와 그 후신인 국가정보원에서 1차장을 지낸 라종일 등의 책을 꼼꼼하게 읽으며, ‘합리적 의심’을 굳혀 갔다.
필자는 당시 한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세심하게 검토했고, 미국-남한, 미국-북한, 남한-북한, 미국-버마, 남한-버마, 북한-버마 등의 외교와 관련된 정부 문서들과 연구서들을 추적했다. 한국과 미국의 정부 문서 가운데는 얼마 전에야 일반인에게 공개된 문서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1980년대 초반, 미국과 한국의 정권이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작전을 추진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아울러 테러범으로 지목된 ‘강민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남한 정부 관계자들이 보인 의외의 연민과 애정에 주목했다. 그리고 북한의 공작원이라는 ‘강민철’에 대한 여러 묘사가 남한의 북파공작원이 회고한 것과 너무도 일치함을 밝혀냈다. 현직 기자인 필자는 ‘강민철’이 수감되어 있었다는 미얀마의 교도소에서 근무했다 퇴직한 교도관과 통화하여 증언을 듣는 노력도 기울였다.
그리하여 필자는 1983년 버마 아웅 산 묘소에서의 폭발이 전두환 정권 초기 3년 내내 일어났다는 ‘북한에 의한 남한 대통령 시해 기도’ 사건 가운데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웅 산 묘소에서의 폭발은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공작’이었다는 것이다.
북한과 버마는 미국에 반기를 들고 있던 비동맹운동을 주도하던 두 축이었다. 버마에서 북한이 남한 국가원수를 살해할 의도로 테러를 벌인 듯 사건을 일으켜 북한을 비동맹운동에서 고립시키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것이 당시 정권의 의도였다는 것이다. 물론 전두환 정권만의 계획이 아닌 미국과의 협조 속에서 이루어진 작전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제1부에서는 전두환 정권이 1983년 이전부터 북한이 남한의 대통령을 시해하려 ‘대통령 시해 모의 사건’을 꾸며 왔음을 밝힌다. 그리고 시해 기도 이유는 번번이 ‘광주에서의 학살을 응징한다’라는 것으로 발표되어 왔는데, 전두환 정부는 버마에서의 테러도 같은 이유로 설명했다.
제2부에서는 1983년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한국과 버마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상히 소개하면서 ‘아웅 산 묘소 사건’이 기획되고 준비되어 왔음을 밝힌다. 사건 당일을 전후하여 벌어진 일들,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기괴한 여러 정황들(제3부)도 필자의 ‘합리적 의심’을 뒷받침한다. 아울러 처음에는 서울에서 왔다던 ‘강민철’이 북한 공작원임을 시인하는 과정에 안기부 직원이 간여한 정황도 밝힌다(제4부).
필자는 버마에서의 폭발 사건 이후 다대포에서 ‘간첩’을 생포한 일이나 여러 국가를 북한과의 관계 정도에 따라 분류하여 외교 관계를 다시 정립한 일(“늑대 사냥”)이 모두 버마에서의 사건을 마무리하는 작업으로 본다(제5부).
아울러 필자는 전두환 시절에 추진했던 남북회담이 북한으로 하여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을 저질렀다고 인정케 하기 위한 속셈에서 시작되었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제6부).
‘강민철’이 북한의 공작원이 아닌 북파공작원이라는 의심은 버마에 수감되어 있던 강민철을 한국 정부에서 관리한 사실(제7부)로 인해 더욱 깊어진다. 제8부는 강민철에 대한 정부 관계자의 묘사와 설명이 북파공작원 스스로 증언하는 훈련 과정과 일치함을 보여 준다.
제9부는 당시 버마와 미국의 관계, 버마와 북한의 관계를 개괄하고, 버마와 한국이 CIA의 동시작전구역이었음도 설명한다.
제10부는 1983년 버마에서 일어난 사건에 견줄 수 있는 여러 사건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의혹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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