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하청노조 유최안 부지회장 언론 인터뷰-한겨레기사

작성자
사회민주노동당
작성일
2022-07-28 00:1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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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하청노조 유최안 부지회장 언론 인터뷰-한겨레기사

한겨레 기사



유최안 “22년 차 하청노동자 월급 207만원…이제 모두 아는 거지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51일 파업 ‘상징’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병원서 첫 인터뷰

“임금 대폭 인상 못했지만, 집단교섭 성과”



푹푹 찌는 여름, 1㎥(0.3평) ‘사제 감옥’에 31일간 자신을 가뒀던 이가 있다.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는 팻말과 함께. 178cm 장신의 몸을 1㎥ 안에 접어 넣으니, 목이 굽고 무릎과 허리는 시큰거렸다. 스스로 만들어 들어갔으나, 진짜 감옥보다 못한 환경이었다.



“오랜만에 몸을 쭉 편 거는 시원했는데, 희한하게 누우면 아파요. 휴일이라 아직 MRI(자기공명영상)를 못 찍었는데, 뼈, 관절, 골반이 아파서 누웠다, 앉았다 합니다. 제 건강 때문에 조합원들이 투쟁을 너무 빨리 끝낸 게 아닐까 싶어 많이 미안했습니다.” 한달여 만에 들것에 실려 철제 구조물에서 나온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23일 경남 거제 대우병원에서 <한겨레> 기자를 만나, 동료들이 자신 때문에 투쟁을 접은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협상 타결 소식을 듣고도 안 믿었습니다. 조합원 총회 끝날 때까지 안 믿었어요. 아시다시피 엄청 아쉬운 안건이었기 때문에….”



지난 22일 조선하청지회가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들과 △4.5%(업체별 평균) 임금 인상 △내년도 상여금 140만원 지급 △폐업한 하청업체 노동자 최우선 고용 노력 등에 합의했다. 정부의 공권력 투입 압박 속에 51일간의 긴 파업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언론은 ‘법과 원칙’의 승리를 이야기하고, 하청노동자들이 사실상 패배했다고 평가한다. 이번 파업의 ‘상징’이었던 유 부지회장이 구조물 밖으로 나오자 경찰의 업무방해 수사와 원·하청의 손배소 압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 부지회장을 만나 파업을 끝낸 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22년 차 용접공 월급 207만원



“사랑합니다, 투쟁!” 노사 합의 이후 유 부지회장이 구조물 밖으로 나오자 100여명의 조합원이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가림막을 위로 높이 펼쳐 들었다. 그의 지친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구조물 밖으로 나온 순간을 ‘눈물’로 기억했다. “조합원들 목소리 듣고 미안해서 많이 울었죠. 투쟁을 접고 싶어 접은 게 아니잖아요. 대우조선해양 원청과 대주주 산업은행이 22일까지도 아무런 결단을 하지 않았고, 정부는 손해배상소송이 ‘법과 원칙’이란 입장이었죠. 너무 속상했습니다.” 가림막을 든 동료들도 그와 같은 마음인 듯 눈물을 흘렸다.



유최안 부지회장과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은 6월2일부터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조선업 불황 이후 악화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6월22일부터 유 부지회장은 옥포조선소 제1도크(배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건조 중인 원유운반선 바닥의 철제구조물에 들어가 점거 농성을 벌이고, 노동자 6명은 15m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배를 만드는 ‘진짜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선박 건조 작업이 중단됐다. 그동안 조선업 원청노동자들의 파업이 있긴 했지만, 하청노동자들이 배 띄우는 작업마저 막으며 위력적으로 투쟁한 첫 사례였다.



지난 2016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대대적인 임금 삭감을 겪었다. 상여금 가운데 400%가 기본급에 산입돼 “최저임금 인상이 퉁쳐졌고” 150%는 아예 삭감됐다. 30m 높이 선박에 매달려 위험하고 고된 노동을 한 대가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급 1만원 안팎(1차 하청업체 정규직 기준)이었다. 22년 차 용접공인 유 부지회장도 시급 1만350원을 받았다. 2022년 최저임금 9160원을 겨우 넘기는 금액이다. 그는 그렇게 한 달 꼬박 일하고 각종 세금을 내면 200만원 남짓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지난 1월 그이 급여지급 명세서에 찍힌 실수령액은 207만5910원. 동료들이 시급 2만원 이상을 받는 육상플랜트나 건설업 쪽으로 떠나면서 남은 이들의 노동 강도는 더욱 세졌다.



파업 내내 ‘30% 임금 인상’을 주장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30% 임금 인상은 애초 깎인 급여의 원상회복이다. 하지만 임금인상률은 파업 전 하청업체가 제안한 ‘임금 4.5% 인상’ 수준에 그쳤다. “엄청 아쉬운 합의죠. 그래도 이번 싸움으로 대한민국 조선소 하청 노동자 현실을 모두에게 알리는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고 말했다.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 역시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0.3평이라는 공간에 자기 자신을 가둔 31일간의 모습이 조선 하청노동자의 삶 그 자체였다. 이번 투쟁은 그 삶을 사회적 문제로 확산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노노 갈등’ 피해 1㎥ ‘감옥’ 속으로



“처음에는 뭔지도 모르고 삭감을 받아들였는데 하루는 누가 하청업체 사장한테 ‘이건 아니지 않냐’며 뭐라고 하더라고요. 듣다 보니 맞는 말 같아 짝짝짝 박수를 쳤는데 점심시간에 ‘노동조합 하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유 부지회장의 노동조합 활동은 2017년 조선하청지회 결성 초기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이번 투쟁을 이끈 김형수 지회장이었다.



“처음엔 형(김형수 지회장)이랑 사이도 안 좋고 해서 안 가려 했는데, 사람들한테 ‘같이 막아내자’고 설득하려면 노동조합이 필요하겠더라고요.” 그가 노조활동을 시작하자 업체는 용접사인 그에게 청소일을 시키고, 힘들고 먼 곳으로 일을 보내기 일쑤였다. “사람들이 나만 보면 슬슬 피하고”, “홍보물을 뿌리다가 현장 소장에게 얻어맞는” 일이 생겼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1년 버티니 조합원이 1명씩 늘기 시작했다. “그래도 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을 (그때) 처음 만나 봤어요. 인간답게 사는 것 같았습니다.” 유 부지회장이 가입할 때만 해도 60여명에 지나지 않았던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은 지난 5월 현재 647명으로 늘었다.



새로 가입한 조합원들은 수년간 정체됐던 임금을 올리길 원했다. 지회도 본격적인 투쟁 준비에 돌입해 지난달 초 파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파업 거점’(작업 경로를 부분적으로 막는 방식) 8개를 세웠는데 회사 직·반장 관리자들이 들어와 물건을 부수고 현수막을 뜯어내 거점이 4개로 줄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부딪히니 (정규직들과) 노노 갈등이 생기더라고요. 노노 갈등이 계속되면 우리가 이길 방법은 없고 갈등만 재생산되니까. 노동자들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절대로 뚫리지 않을 거점이 필요했습니다.” 조선하청지회가 유 부지회장의 감옥 농성과 6명 조합원의 15m 고공농성을 결정한 이유다. “(감옥엔) 내가 들어갈 테니 다들 탐내지 마라, 그랬죠. 내가 (입구를 막을 수 있는) 용접사니까. 그리고 동료들 위해 희생도 하고 싶었고요.”



유 부지회장은 원청 노조가 금속노조 탈퇴안을 총회 찬반투표에 부치고 양쪽의 갈등으로 다음 달 8일 법원 결정 때까지 개표가 중단된 데 대해 “하청노동자 임금이 올라가면 원청노동자 처우도 개선될 텐데, 회사가 노노 갈등을 만들어 노동조합을 깨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노동조합이 분열되면 이익을 얻는 사람은 회사뿐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원한 일이었지만 0.3평 생활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첫 일주일은 무릎이 아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관절이 시려 1시간 마다 깨고, 찬 바닥 냉기에 새벽 5시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아침이 밝으면 그는 감옥 안쪽 벽에 `바를 정(正)’을 한 획씩 그으며 날짜를 셌다. 하지만 몸보다 더 아픈 건 동료들의 눈물이었다. 끼니를 챙기러 오는 동료들은 그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울었다. 고공 농성하는 동지들이 그를 향해 “괜찮나” 소리쳐 물으면, 그는 평소보다 더욱 또박또박 큰소리로 “괜찮다” 대답했다.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공권력 투입 소식이 처음 들려온 날엔 무서워지는 마음을 다잡으려 벽 한쪽에 매직으로 “단호한 결의”라고 썼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공권력이) 오면 저항하겠다.’



‘집단교섭’을 고집했던 까닭



지회가 주목하는 이번 합의의 성과 가운데 하나는 하청업체 대표와 집단교섭을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하청업체들은 ‘집단교섭을 하자’는 지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개별교섭을 요구해왔다. 유 부지회장에겐 하청업체와 개별교섭의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2016년 유 부지회장은 자신이 속한 하청업체를 상대로 투쟁해 150여개 하청 가운데 유일하게 상여금을 삭감한다는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을 막아냈다. 하지만 3개월 뒤 업체는 폐업을 선언했다. 새로 온 하청업체 대표는 전보다 더 열악한 취업규칙을 내밀었고, 노동자들은 다시 처음부터 똑같은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규모가 영세한 사내 하청업체는 쉽게 폐업하고 임금 체납도 잦았다.



그런데도 파업 43일째였던 지난 14일 정부는 첫 담화문을 내고 “불법행위를 멈추고 대화하라”며 조선하청지회를 압박했다. “개별 하청업체하고 투쟁해봤자 폐업하면 끝인데 그런 대화만 하라는 건 그냥 (투쟁)하지 말란 말이잖아요. 그리고 교섭이 진행 중인데 정부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회사 쪽이 더 기세등등하거든요.” 외부에서는 ‘하청노동자가 패배했다’고 평가하지만, 집단교섭으로 합의안을 끌어낸 것 자체가 하청노동자들에겐 큰 수확이다. “우리가 극단적 투쟁을 한다고들 하는데 극단적 투쟁이 아니면 안 되는데, 그리고 그렇게 해도 쉽게 안 바뀐다는 걸 이번에 본 거 아닌가요.”



투쟁은 끝났고 옥포조선소도 다시 배 생산을 시작한다. 유 부지회장도 “이제 다른 싸움을 준비” 중이다. 손배소 등 험난한 길이 예정돼 있지만, 그는 다시 노동조합에서 싸움을 시작할 예정이다. “조선소는 하청업체가 폐업하고 노동자들이 임금을 떼이는 상황이 항상 있어요. 투쟁이 마르지 않는 우물과 같습니다. 언젠가 또 한 번 (분노가) 터질 텐데, 그때 대비해 조직을 정비할 계획입니다.”



임금 대폭 인상은 물 건너 갔지만 그는 거제시를 떠날 생각이 없다. 그는 “어차피 조선소 일 해도 병원비도 안 나오는데, 우리가 일궈놓은 노동조합이라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노동조합이 “돈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사는데 유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유 부지회장이 좋아하는 만화에 나오는 글귀다. “그 말처럼 전 늘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거제/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https://youtu.be/M-LoKt7oudE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유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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