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단죄일기: 민족주의만으로는 자본주의를 이길 수 없다.

작성자
사회민주노동당
작성일
2022-08-20 18:05
조회
119
[단죄 일기97-2022.8.14] [100일 특집-2] 10회 나눠 연재!
그래서 하늘에 제사하는 제단을 만들고 임금이 직접 와서 국가의 안위와 영토 확장의 염원을 빌던 산으로 三國史記 基臨尼斯今 조에 보면, “3년 3월 우두주에 이르러 태백산을 향해 望祭를 올리니 낙랑과 대방이 귀복하였다.”(三年三月至牛頭州望祭太白山樂浪帶方兩國歸服)라고 하였으니, 북쪽 변경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나라의 안위(安危)가 걱정되어 굳이 다른 산 다 놔두고 태백산을 향해 望祭를 하며 빌자 낙랑과 대방이 歸服하여 온 것이다.
그것은 태백산이 天祭하던 신령한 산이며, 태백산과 우두주(춘천) 사이에 많은 산이 있지만, 그 산들을 건너 뛰어 태백산을 향해 빌지 않으면 안 되는 산이기에 다른 산 다 놔두고 태백산에 望祭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진단족의 뿌리를 만들게 된 이사부 장군에 대한 첫 번째 日本(倭) 征伐을 적시하면 다음과 같다.
‘위대한 민족의 靈山 太白山을 품은 태백시의 百年大計 발굴-八關會의 재현과 白山神 환웅의 부활로 태백시를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의 始原과 勝戰의 역동적인 도시로!’
- 태백산은 神靈한 산이자 신라 때 北岳.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2 잡지(雜志) 제일(第一) 제사(祭祀)
태백시는 한반도 역사에서 國家祭儀의 상징이었던 태백산의 白山神인 환웅(일본 히코산 中宮의 神 : 후지와라 환웅)과 이사부의 최정예 풍월낭도의 후손인 진단족(일본 히코산의 소수민족으로 신라인)이 한민족의 본향인 태백산에서 팔관회 등 국가제의를 올릴 수 있도록 거시적으로 선양하여 太白山王神인 단종과 함께 엄청난 콘텐츠 가치로 승화시키도록 촉구한다!
苔宗 異斯夫(日本書記:이질부례기 간기/丹陽新羅赤城碑:伊史夫)의 日本征伐 중 처음 정벌한 AD529년의 규슈 후쿠오카 정벌이 중요한 것은 다다라원에서 3개월을 주둔하며 신라 화랑(풍월낭도)의 많은 족적을 남겨 오늘날까지 그 유래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AD529년 규슈 후쿠오카 다다라원 주둔 4촌 抄掠!
→ 風月郎徒의 始原이된 修驗道(학문)의 성지 히코산의 진단족과 태백산의 白山神인 후지와라 환웅을 중궁에, 상궁에는 환인을, 하궁에는 단군을 모신 것에 대한 진상조사로 소수민족에 대한 국가적 예후와 지원으로 국가의 품격과 정체성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라!
→ 다다라원에서 3개월 주둔하며 居道의 병법으로 4촌(다다라, 수나라, 화다, 비지 또는 금관, 배벌, 안다, 위타)을 초략함으로써 볼모로 잡혀 온 신라인들을 구출하여 귀환한 이후 후쿠오카 일원에서는 화랑도의 영향을 받은 유래가 히코산의 神社 중심(가와라 신사의 신라명신(전쟁의 神) 등)으로 전래된 이유를 탐사함으로써 이후
두 번째 정벌인 AD538년 혼슈 가와치 판개궁(명석포에서 화친의
증표로 白馬墳 조성) 정벌과 세 번째 정벌인 AD562년 규슈 야츠시로 센단마치 전단성을 돌파하여 당시 규슈 전역에 산재된 임나 10국(가라국[가라쓰:당진], 안라국[아나토:나가토(혈문)], 사이기국[사이키], 다라국[다라산], 졸마국[사츠마], 고차국[우스키], 자타국[이토다 일대], 산반하국[사와라 일대], 걸손국[구류손산 일대], 임례국[이마리])을 打滅(日本書紀/新羅山의 아라 신사, 앤라쿠지 신사)시킴으로써 일 극우는 치욕스러운 이 세 번에 걸친 日本征伐 시기에 任那日本府가 한반도 남부를 AD562년까지 200년 간 지배했다고 조작을 할 만큼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勝戰이었음을 국가는 진상조사로 民族精氣 復元과 歷史歪曲 剔抉의 轉換點으로 삼기를 촉구한다.(이어서)
☆●☆■☆
"꽃이 흔들린다 바람을 탓하랴!
꽃잎은 바다에 떨어져도
바다를 물들일 꿈만 꾼다네."
[探査 寄稿] 植民史學이 결사 은폐하는 세 번에 걸친 異斯夫의 日本 征伐에서 韓半島 역사상 가장 위대한 勝戰의 상징-“용(龍)” 깃발의 정체는 무엇인가?
조선의 실학자인 順菴 安鼎福 선생이 집필하여 1900년에 후손들이 간행한 시문집 順菴文集 제1권에 수록된 이 詩는 苔宗 異斯夫가 부산 태종대에서 주필한 후 신라 군사 반을 이끌고 법흥왕의 만류에도 끊임없이 신라를 침탈한 왜구를 척결하기 위해 출정하여 AD538년 혼슈 가와치 인근 명석포에 상륙하여 천황가(27대 안카, 28대 센카)를 척살하여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수모를 안겼던 역사적인 정벌을 수록한 詩이다.
順菴文集의 서지적 사항. 27권 年譜 合 15冊. 木活字本. 제자 黃德吉이 편집하고 뒤에 安景褘가 雜著의 篇目을 수정했으며, 5대손 鍾曄이 1900년에 刊行하였다. 卷末에 종엽의 發文이 있다.
[<중략>용 깃발을 휘날리고 타고를 울리면서(揚龍旆擊鼉鼓) 선발대가 곧바로 명석포를 공격하니(前茅直擣明石浦)왜왕이 겁에 질려 화친을 청하고는(倭王失色事和親) 짐승 잡아 맹세 쓰고 신명께 고하였네(刑牲載書告明神) <중략>] 이 당시 일본(倭) 천황가는 대가 끊겨 혼란이 일어났으며, 명석포에는 백마를 죽여 돌을 쌓아 和親의 증표로 삼았다 하고, 이로 인해 이 용(龍) 깃발은 이사부가 정벌한 지역(특히 세 번째 정벌인 AD562년 규슈 야츠시로(팔대시) 센단마치엔 지금도 묘건신(이사부의 신라 박(狛)과 유사한 龍[玄武]을 형상화)이 있으며, 구마가와 강변엔 신라에서 온 갓파(가라의 무리들)라는 갓파 도래비 동상이 있다.
이처럼 龍 깃발은 가야지역의 口傳說話에 나타난 것처럼 이사부가 출정했다 하면 그 지역은 공포의 저승사자가 뜬 것으로 생각 피난가기 바쁠 정도였듯 龍 깃발은 이사부의 상징이자 신라 수군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신라가 AD676년 11월 당과 激戰을 벌일 때 伎伐浦에서 사찬 시득이 설인귀의 수군을 대파하여 大唐戰爭의 승자가 될 때에도 이 龍 깃발은 신라 수군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이는 李瀷 <星湖僿說> 萬物門 龍生九子에 나타난 것처럼 龍은 여러 형태로 인식되는 상상의 동물로 이사부의 龍 깃발 역시 최종적인 결론은 신라 박(狛)이라는 것과 一脈相通하며, 龍生九子의 여덟 번째 아들이 바로 狻猊로 신라 박(狛)이라는 것이다.
[龍生九子]에서 龍의 아들이나 용이 되지 않으니~
첫째 아들 비희(贔屭)는 거북선이 되었고,
둘째 아들 이문(螭吻)은 지붕 위 용마루가 되었고, 셋째 아들 포뢰(蒲牢)는 종의 윗부분에 있어 소리를 지르며,
넷째 아들 폐안(狴犴)은 북청사자를 말하며,
다섯 째 아들 도철(饕餮)은 악수(惡獸)로 식욕과 탐욕을 경계하며,
여섯째 아들 공복(蚣蝮)은 다리에 붙어 악귀를 막고, 일곱째 아들 애자(睚眦)는 관우의 청룡언월도에 새긴 것처럼 죽이기 좋아하고,
여덟째 아들 산예(狻猊)는 사자를 닯은 신라 박(狛)이 되었고,
아홉째 아들 초도(椒圖)는 문고리에 장식되어 숨기를 좋아하니 龍의 아들도 서로 좋아하는 것이 틀리니 인간들도 보는 눈 따라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 龍 깃발의 상징!
[著作權 論文]
>이 논문은 정토의 이사부저작권 30건과 이사부백서 2,000page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中國 <山海經>의 박(駁)과 日本 <信西古樂圖>의 신라 박(狛) 그리고 李瀷 <星湖僿說> 龍生九子의 산예(狻猊)와 村山智順 <朝鮮의 鄕土娛樂>에서의 江陵倡優輩에서 나타난 異斯夫의 木獅子假面舞
沈一洙의 문집 『遯湖遺稿』에서는 1909년까지 巫覡에 의해 端午祭儀를 올렸으나 일제에 의해 중단되었다. 이 端午祭儀는 儀式과 함께 개막 전 시시딱딱이와 장자마리가 흰 천과 파란 천을 흔들면서 동해를 건너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이는 異斯夫가 東海 于山國을 征伐하러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며 이 始原은 AD512년 하슬라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하고 돌아오자 강릉백성들이 모두 나와 춤을 추고 놀았다는 아키바 다카시의 <朝鮮民俗誌>와 李瀷 <星湖僿說>, <新增東國輿地勝覽>44권 江陵大都護府 편에 기록되어 國家年表인 ‘하슬라(강릉)군주 이사부, AD512년 우산국 복속’으로 공인되었다.
이렇게 異斯夫가 소지왕의 磨腹子로 스승인 백결선생에게서 충신 박제상이 전수한 <澄心錄>과 6琴의 律呂 등 天文地理에 대한 수련을 한 결과, 中國 <山海經>에서는 중곡산에 살며, 흰 몸에 검은 꼬리를 가진 말처럼 생겼고, 머리에 뿔이 하나 달려있는 호랑이의 발과 톱날 같이 날카로운 호랑이의 이빨을 가지고 있고, 마치 북을 치는 것 같은 소리로 운다고 하는 박에 대해 호랑이와 표범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져 있어 이는 전란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것과 중국 兵書에서 강태공의 <六韜>에 나타난 五音소리가 적을 힘으로가 아닌 기만술로 복속시킬 수 있는 計策임을 착안했을 것이며,
《和漢三才圖會》에는 박의 이빨을 지니면 흉한 일을 막을 수 있다고 하며, 여기서는 표범은 박을 잡아먹고, 박은 호랑이를 잡아먹는다고 기술한 것이 《海外北經》에도 박이라는 이름의 요괴가 기술되어 있는데, 마치 백마를 닮았는데 톱날같은 이빨을 지니고 호랑이나 표범을 잡아먹는다고 기술되어 있어 박은 정의롭고 명예로운 짐승으로, 인간의 선함에 감동하여 그에 따른 보상을 내리기도 해 훗날 조선 燕巖 朴趾源의 ‘虎叱’에서는 호랑이를 잡아먹는 짐승으로 추이, 황요, 오색사자 등과 함께 언급된 것으로 본다.
이는 신라 후기에 들어와서도 최치원의 <<鄕樂雜詠>>[산예(狻猊)]에 나타난 것처럼 가면극으로 표현되었고, 李瀷 <星湖僿說> 龍生九子에서는 龍의 4째 아들 牌案과 8째 아들 狻猊(新羅 狛)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狻猊(新羅 狛)은 사자를 닮은 용이며, 향로에 새긴다 하고 또 앉는 것도 좋아하는데 절의 불좌에 앉아 있는 사자의 동상이 바로 狻猊라고 정리하였다.
이처럼 異斯夫將軍은 실직군주로 있을 때 힘으로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경주 月城에서 기르던 土種犬(삽살개와 동경개)에 착안하여 당시 하슬라군주로 재임 시 나타난 경포대(옛 경포 烏竹島 설화/강문 진또배기 호랑이 유래)의 호랑이를 바탕으로 북청사자의 복식과 같은 나무로 깍은 사자모습의 무서운 가면을 얼굴과 두 손, 두 발 등 다섯 개의 가면을 깍아 붙이고 호랑이 몸체의 털옷을 뒤집어 쓴 모습으로 우산국을 정벌, 당시 대마도를 장악하여 동해를 휘저었던 우해왕을 欺瞞術로 항복하게 함으로써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勝戰報를 우리에게 주었던 것이다.
이 낭보는 당시 신라가 변방의 소국에서 동해의 해상패권을 장악한 일대쾌거로 지증왕은 이사부장군이 강릉으로 귀환하자 금동관과 함께 강릉백성들에게 술과 고기를 내려 몇날몇일을 사자가면을 쓰고 춤을 추고 놀았으며, 이후 강릉백성들은 이사부를 단오의 신으로 모시며 개막전 사자놀이를 했으니 얼마나 큰 축제의 승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이사부의 승전을 말살하기 위해 그 유적지를 땅에 묻었으며, 이사부지신을 모시던 대성황사도 1928년 땅에 묻고, 일본인 군수 농택성 주도로 1938년 그 자리에 신사를 세워 제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천조대신)로 하여금 그 기운을 억누르고 있으나 오늘날까지 강릉의 위정자들은 그 실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특별 기고2023]대한민국이 식민지가 아니라면 신라 이사부장군을 선양해야 하는 이유>
태종 이사부장군께서 20대 약관에 우산국(현 울릉도와 독도)을 복속하여 오늘 날 우리 땅이 된지 1,5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 국민들은 이사부장군을 독도는 우리 땅 가사에 나오는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 땅!'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 뿐 이면에 엄청난 역사왜곡과 조직적인 유적지 말살, 3번에 걸친 왜 본토 정벌 은폐 등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전국적으로 이사부장군을 선양하기는 커녕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능멸하는 작태가 이권에 눈이 먼 식민사학과 일부 지자체 주도로 버젓이 축제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거나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올해로 14년째 이사부장군 한 분만 전문으로 한 연구소를 설립하여 전국의 이사부 연구 및 선양을 한 결과 우리나라 이사부 저작권의 대부분인 30건의 논문,어문,편집,영상 저작권을 등록하였고, 2010년 창작집 이사부를 시작으로 2020년 서사시 이사부대서사시집을 완결하는 등 다수의 출판 및 저작물을 자체 도서출판 이사부를 통해 출간 및 제작하여 보급하고 있다.
또한 네이밍에 의한 대중화 운동의 일환으로 2010년 이사부크루즈 유람선(여수)의 제호를 명명하였고, 2016년엔 국민공모로 한국해양과학탐사선 이사부호가 선정되 부산항을 모항으로 전세계에 장군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사부장군 선양이 남해의 이순신장군처럼 국가적인 아젠다에 의해 생가인 충남 아산과 남해안 4대 승전지 등 다섯 곳의 지자체와 세 곳의 광역지자체, 여러 대학의 이순신연구소가 아닌 정토 작가 개인의 사비와 연구로 명맥을 잇고 있는가?
바로 이사부장군에 대한 제대로된 선양을 할 수 없는 근본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사부에 대한 역사는 일제강점기 고대사에 대한 방대한 고서의 일본 등 반출과 제척을 시작으로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 주도의 반도사관을 집대성한 조선사 35권에 의해 독도와 왜 정벌이 왜곡, 말살된 것이다.
이는 일본서기와 삼국사기, 순암문집, 남당유고 등 일.한의 기록에서도 나타나는 AD529년의 태종 이사부(상신 이질부례지 간기)의 규슈 후쿠오카 4촌 초략과 다다라원 3개월 주둔, AD538년 아시량의 도독 이사부의 신라군사 반을 이끌고 혼슈 명석포 정벌과 백마분 조성, AD562년 규슈 야츠시로(팔대시) 센단마치 정벌과 화랑 사다함 선봉의 전단성 돌파 임나10국 멸망 등 조선총독부의 반도사관 주도학자들은 이렇게 철저하게 이사부의 왜 흔적을 말살하였으며, 한국 내 이사부 승전지 유적들을 강릉의 강릉신사, 울릉도의 울도신사 등에 맞춤형 신사를 세워 이사부의 흔적을 지웠던 것이다.
하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해방이 후 친일식민학자들에 의해 대표적인 이사부 유적지 마다 중요한 역사유물이 발굴되고 확인되었지만 대부분 방치되어 외면되고 있으며 오히려 엉터리 축제를 이유로 왜곡되고 있어 대표적인 두 곳만 예를 들어본다.
첫째는 강원도 강릉이다.
이곳은 6개 시군이 실직주 군주(동해,삼척)에서 하슬라주 군주(강릉, 양양 일부), 병부령(양양 일부, 속초, 남북고성)까지 이사부장군께서 AD505년 첫 부임한 삼척과 AD511년 고구려를 물리친 첫 승전의 동해, AD512년 우산국을 복속한 승전지 강릉, AD551년 고구려 10개의 성을 점령한 양양, 고성과 AD568년 함경도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운 것처럼 이사부장군과 후임 군주 성종의
승전지와 이로인한 영랑 등 화랑들의 순례지가 된 곳이다.
하지만 2008년 강원도가 이사부장군을 남해 이순신장군처럼 육성하려 1,984억의 사업용역을 발표하면서부터 비극이 시작되 2022년 현재 승전지이자 금동관, 장군찰갑옷 등 천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온 강릉은 현대그룹이 경포 구 현대호텔 부지에서 쏟아져나온 다량의 유물 등을 근거로 경포대신라토성전시관을 조성한 것 외 강릉시는 지금까지 이사부 유적을 방치하고 있다.
둘째는 충북 단양이다.
1978년 발굴된 국보 제198호 단양신라적성비에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이사부장군께서 AD550년 이 곳 적성에 비를 섀겨 9명의 장군들을 휘하로 남한강 하류를 장악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물리친 곳이나 일체의 선양이 없는 상태이며, 현재 단양군은 이 후 고구려 온달장군이 온달산성을 쌓고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곳으로 비정한 후 매년 혈세로 수십억을 들여 온달장군 축제를 하고 있으나 최근 서울 광진구에서는 아차산 연구결과 AD603년 온달장군은 단양이 아닌 아차산에서 전사했으며 그 이름은 고승장군이라는 발표와 함께 단양의 온달산성 또한 연대측정결과 신라산성으로 밝혀져 역사왜곡 논란이 일고있다.
세째는 경북 경주이다
경주 왕실이 있던 월성은 태종공이 AD484년 태어나 소지왕의 마복자로 후견받으며 스승인 백결선생에게 수련받았던 고향같은 곳이자 소지왕의 동생인 아진공과 딸인 보옥공주와의 추억이 서린 곳으로 경주시는 생가 및 성지로 선양해야할 것이다.
네째는 부산 태종대이다
옛 절영도였던 부산 영도의 태종대는 태종 이사부장군이 세 번에 걸쳐 신라 군사와 주필하며 왜를 세 번씩이나 정벌했던 역사적인 승전지이다.
AD529년 규슈 후쿠오카 다다라원에서 3개월을 주둔하며 4촌 초략 후 AD538년 혼슈 명석포에서 천황가 척살 후 화친의 증표로 백마분 조성, AD562년 규슈 야츠시로(팔대시) 센단마치에서 전단성을 돌파하여 규슈 전역의 임나10국을 멸망시킨 출정지로 부산은 세계적인 승전 성지로 선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부산 태종대, 경북 경주 월성, 충북 단양 적성, 강원 강릉 경포대 4곳을 대표적인 성지로 선양하며 첫 승전지 동해 용정산성, 정벌지 울릉도와 독도, 경남 김해, 창녕, 서울 북한산 등의 국내와 함께 정벌지인 규슈 후쿠오카, 혼슈 오사카, 규슈 야츠시로를 순례한다면 이사부장군 선양은 메인 4성지, 서브 5성지, 해외 3성지의 순차적인 선양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처럼 역사는 아무리 왜곡하고 말살해도 후대에서 언젠가 매장 문화재나 기록발굴에 의해 재정립되기 마련으로 국가는 이렇게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이사부를 새롭게 조명하여 대한민국 미래가치의 아젠다이자 민족정기 복원의 아이콘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안=윤리와 도덕이 있는 국가, 이사부국!
<初心으로 가기 위한 世俗五戒와 이사부의 風月道 정신>
이사부의 風月道는 儒佛仙 三敎의 始原으로 공동체 사회의 화쟁 정신과 단군의 蘇塗 五常 戒律, 佛敎의 思想이 가미되어 있다. 단군조선의 소도 오상 계율은 공자의 말을 빌어 유학을 창시한 것이라기 보다 그 이전의 사상을 집대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한다.
그래서 대성전에서 성자가 성인 ‘聖’자가 아니고 이룰 ‘成’자라고 한다. 유교 이전의 사상은 배달국, 단군조선의 경전으로 天符經, 삼일신고, 첨전계경이 있다. 蘇塗에서 충, 효, 신, 용, 인을 학습한 국자랑 또는 천지화랑이 있었다고 한다. 원광법사는 귀산과 추항의 요구에 따라 "...세속오계가 있으니... 라고 하며 世俗五戒는 이미 있는 것이라고 했다.
世俗五戒, 혹은 오계는 신라 진평왕 때 원광법사(이사부의 딸 숙명궁주의 아들이다)가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의 요청을 받아 알려준 다섯 가지 修身戒이다. 오늘날 화랑도의 윤리적 지침 및 실천 이념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風月道 정신의 기반으로 이사부는 ‘마복자’란 소지왕을 대부로 한 인재로 있을 때, 스승인 백결선생에게서 내물왕의 충신 박제상의 澄心錄과 백결선생의 6琴의 律呂에서 琴尺의 道를 수련했다.
승려 원광이 수행을 하고 돌아오자 귀산과 추항이 찾아와서 “우리는 속세의 사람이니 사군자와 교유하는 데 필요한 심신수양의 계를 알려 달라.”라고 요청한다. 이때 원광과 귀산 추항은 모두 화랑이 아니었다. 이에 원광이 말하기를 “불계로는 보살계가 있어 이를 십계로 삼고 있으나, … 지금 世俗五戒가 있으니 …”라며 알려 준다. 이때 원광이 지었다는 말은 없고 “세속오계가 있으니”라고 하여 이미 남이 만든 계율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이미 이사부에 의해 풍월낭도라는 초기 화랑들에게 교훈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世俗五戒] 事君以忠 :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기어야 한다.
事親以孝 : 효로써 부모를 섬기어야 한다.
交友以信 : 믿음으로써 벗을 사귀어야 한다.
臨戰無退 : 싸움에 나가서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殺生有擇 :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내용을 들은 귀산은 원광에게 살생유택의 계율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질문하였다. 이에 원광은 동물을 잡을 때 꼭 필요한 만큼만 잡아야 한다는 뜻이라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六齋日과 봄, 여름철에는 살생하지 말 것. 가축을 죽이지 말 것. 작은 동물을 죽이지 말 것. 꼭 필요한 만큼만 잡고, 많이 죽이지 말 것. 그리고 이를 세속의 좋은 계율(世俗之善戒)이라 하니, 귀산은 이를 이해하고 돌아갔다.
[풍월도 정신] 이처럼 이사부의 풍월도 정신은 화랑도의 윤리적 지침 및 실천 이념으로 전수되어 전쟁 시에도 비록 적일지라도 생명을 소중히 하기 위해 생명존중 평화사상에 기반한 창의적인 병법(AD512년 우산국 정벌 시 木獅子 假面計는 대표적 欺瞞術로 강태공의 六韜 五音소리를 응용)을 활용했으며, 이는 구전에서 딸인 숙명궁주의 아들 원광법사에게 체계화 되었으며 훗날 元曉의 화쟁이론으로 확대되었으니 오늘날 검찰과 같은 죽은 법만 외워 산 사람 때려잡는 기술만 가르치는 법조인과 지망생들에게 법의 人本을 깨닫게 하는 반면교사의 국가이념이 아닐 수 없다.
#위대한 민족의 靈山 太白山을 품은 태백시의 백년대계 발굴-八關會의 재현과 白山神 환웅의 부활로 태백시를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의 修鍊과 勝戰의 도시로!
태백시는 한반도 역사에서 國家祭儀의 상징이었던 태백산의 白山神인 환웅(일본 히코산 中宮의 神 : 후지와라 환웅)과 이사부의 최정예 풍월낭도의 후손인 진단족(일본 히코산의 소수민족으로 신라인)이 한민족의 본향인 태백산에서 팔관회 등 국가제의를 올릴 수 있도록 거시적으로 선양하여 太白山王神인 단종과 함께 엄청난 콘텐츠 가치로 승화시키도록 촉구한다!
苔宗 異斯夫(日本書記:이질부례기 간기/丹陽新羅赤城碑:伊史夫)의 日本征伐 중 처음 정벌한 AD529년의 규슈 후쿠오카 정벌이 중요한 것은 다다라원에서 3개월을 주둔하며 신라 화랑(풍월낭도)의 많은 족적을 남겨 오늘날까지 그 유래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AD529년 규슈 후쿠오카 다다라원 주둔 4촌 抄掠!
→ 風月郎徒의 始原이된 修驗道(학문)의 성지 히코산의 진단족과 태백산의 白山神인 후지와라 환웅을 중궁에, 상궁에는 환인을, 하궁에는 단군을 모신 것에 대한 진상조사로 소수민족에 대한 국가적 예후와
지원으로 국가의 품격과 정체성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라!
→ 다다라원에서 3개월 주둔하며 居道의 병법으로 4촌(다다라, 수나라, 화다, 비지 또는 금관, 배벌, 안다, 위타)을 초략함으로써 볼모로 잡혀 온 신라인들을 구출하여 귀환한 이후 후쿠오카 일원에서는 화랑도의 영향을 받은 유래가 히코산의 神社 중심(가와라 신사의 신라명신(전쟁의 神) 등)으로 전래된 이유를 탐사함으로써 이후 두 번째 정벌인 AD538년 혼슈 가와치 판개궁(명석포에서 화친의 증표로 白馬墳 조성) 정벌과 세 번째 정벌인 AD562년 규슈 야츠시로 센단마치 전단성을 돌파하여 당시 규슈 전역에 산재된 임나 10국(가라국[가라쓰:당진], 안라국[아나토:나가토(혈문)], 사이기국[사이키], 다라국[다라산], 졸마국[사츠마], 고차국[우스키], 자타국[이토다 일대], 산반하국[사와라 일대], 걸손국[구류손산 일대], 임례국[이마리])을 打滅(日本書紀/新羅山의 아라 신사, 앤라쿠지 신사)시킴으로써 일 극우는 치욕스러운 이 세 번에 걸친 日本征伐 시기에 任那日本府가 한반도 남부를 AD562년까지 200년 간 지배했다고 조작을 할 만큼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勝戰이었음을 국가는 진상조사로 民族精氣 復元과 歷史歪曲 剔抉의 轉換點으로 삼기를 촉구한다.
"이사부장군의 무덤은 아직 확증되지 못했으나 우리는 이사부지신이 잠든 곳을 안다. 바로 강릉 대성황사 터로 이사부지신은 조선총독부가 1909년 무격에 의한 단오제의를 중단시킨 후 1928년 땅에 묻고 1938년 세운 강릉신사의 제신 천조대신(아마테라스 오미카미)과 치열한 신의 전쟁을 벌이고 있어 아마 장군께서 다시 부활하신다면 이 땅의 친일매국노들에게 환두대도로 내려쳐 일망단죄하지 않을까! 2022년은 이사부장군 탄신 1538주년"
"인생이란 눈 뜨면 한바탕 뛰어놀다
지치면 조용히 누워 눈을 감는 것!"
<조선총독부 관저(청와대 부지) 영욕의 역사>
1939년부터 사용한 현 청와대 부지의 朝鮮總督府 總督官邸는 일제가 永久植民地를 구현하기 위해 신축했던 지휘관저로 이후 해방이 늦었더라면 龍仁 모현에 天皇의 皇宮을 조성하여 아예 일본 도쿄의 황궁을 조선으로 옮겨 朝鮮總督府와 함께 새로운 일본의 수도로 만들 야심찬 프로젝트였으나 敗戰으로 一場春夢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해방이 77년이 지났는데, 친일파가 득세한 정권이 들어서자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가등신사 옆으로 옮기더니 관저를 남산 통감관저 옆으로 옮기려 하고 이제는 1993년 일제청산으로 철거한 조선총독부 관저를 다시 복원하겠다니 역사가 일제식민지 시기로 돌아가는 가!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제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발걸음을 함부로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 "국정로드맵이 없는 정권에선 헌법이 유일한 국정로드맵!"
#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 주권의 민주공화국으로 누구나 1인 1표의 평등주의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장 총강과 1조에서 2조까지만 정독해도 전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1987년 6월 항쟁의 국민 주권에 의한 헌법시행 34주년)
대한민국 헌법[시행 1988. 2. 25.] [헌법 제10호, 1987.10.29 전부개정] 제1장 총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2조 ①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②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정신>주권(대통령(1인) 1표=국민(1인) 1표)>헌법 제1장 1,2항
"{한일대첩} 이제 환란의 시대에선 밀정과도 같은 '순왜'와 '토왜'를 척결하기 위해 "항왜"가 양심선언할 때!"
*"인파출명 저파비”
(人怕出名 豬怕肥)
'사람은 이름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사상의 양심선언!>>>나는 자랑스런 "이사부 팬덤"(fandom)으로 이사부역사재정립에 대한 연구결과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고 아울러 왜ㅣㄱ을곡된 식민학을 제기하는 이에게도 30건의 저작권을 바탕으로 법리적 대응을 함으로써 이사부장군의 명예를 수호하고 위대한 족적을 복원하겠습니다!
●이사부 필독서>일본(왜) 정벌 3회!
<順庵(安鼎福)文集 제1권 詩편에 있으나 賣國植民史學에선 죽어도 안밝히는 苔宗 異斯夫의 日本(倭國)征伐(부산 태종대의 원유래)>
[解說] “이 征伐은 두 번째로 AD538년 부산 태종대에서 駐蹕하여 신라군사 반을 이끌고 출병하여 혼슈 가와치, 천왕의 판개궁이 있는 명석포에 상륙 倭 27,28대 안카, 센카천왕을 척살하자 倭는 화친을 맹서하며 명석포에다 백마 죽여 돌을 쌓아 증표(白馬墳)로 삼았는 데, 한국에서는 이를 속이기 위해 신라 유례왕 시기 또는 진평왕 시기라 하나 탐사결과 모두 거짓으로 이는 태종 이사부가 AD529년 첫 번째 정벌인 규슈 후쿠오카 다다라원에서의 4촌 초략과 AD562년 세 번째 정벌인 규슈 야츠시로 센단마치에서의 임나 10국 打滅을 함께 은폐하기 위해 조작한 任那日本府(AD562년까지 韓半島 南部[伽耶] 經營說)로 이사부의 세 번에 걸친 일본(왜) 정벌 시기를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한반도의 이사부 관련 유적지의 神社와 倭 정벌 지역의 神社 및 원 유래, 지명의 음차와 훈차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하면 왜 이토록 賣國植民史學이 집요하게 이사부를 말살하려 했는 지 그 답이 나오니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절실하다.”
일본 지역에 백마총이 있는데
/白馬塚在日域
왜인들이 대를 이어 그 무덤을 손질하며 하는 말이
/倭人世世勤封築
옛날에 신라 왕이 쳐들어 올 때
/謂昔羅王憤侵軼
수만 명 정병이 바다에 떠 밀려오니
/精兵數萬浮海伐
물귀신도 뒤로 주춤 해신(海神)도 길을 비켜
/馮夷淪易海若奔
큰 바다 동쪽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네
/大海印無涯藩
용 깃발을 휘날리고 타고를 울리면서
/揚龍旆擊鼉鼓
선발대가 곧바로 명석포를 공격하니
/前茅直擣明石浦
왜왕이 겁에 질려 화친을 청하고는
/倭王失色事和親
짐승 잡아 맹세 쓰고 신명께 고하였네
/刑牲載書告明神
그 후로는 오랜 기간 바다가 조용했고
/從此鯨波久不涌
천고의 유적으로 저 무덤이 남았다네
/千古勝蹟留遺塚
그 옛날 진터가 절영도에도 있는데
/絶影又有古壘寨
이것이 태종대라고 뒷사람들 말을 하지
/後人說是太宗臺
총알만한 신라 땅 한쪽에 있었으면서
/彈丸羅地在一隅
장하여라 병력이 어찌 그리 강했던가
/猗歟兵力何壯哉
어쩌다가 후세 들어 옛날과는 정반대로
/歸來後世事反古
우리 나라 전역이 적의 침략 늘 당하고
/大東全地受侵侮
지금도 해상에는 허구 많은 공갈배가
/至今海上多虛喝
제 욕심 채우려고 해마다 손 벌린다네
/穀帛年年充其欲
생각하면 그리 된 것 까닭이 왜 없겠는가
/靜思其故豈無因
서생이 부질없이 국경을 안정시킬 계책 짜본다네
/書生謾有安邊策
*謂昔羅王 : 龍(신라 박[狛])의 깃발을 단 모습과 동해왕으로 부르던 태종 이사부의 지칭으로, 또는 함께 從軍했던 차기 후계자인 입종 갈문왕(戰死)으로 보기도 한다.
#한반도,만주 신사 1,141곳 중 일본정벌 주필지였던 부산 태종대가 내려다보이는 용두산신사에 왜 제신들을 12신위나 창립했는지와 우산국 정벌 출항지인 강문엔 옛남대천 위에 강릉신사를 이사부지신이 있던 대성황사를 땅에 묻고, 그 자리에 강릉신사를 세워 제신 천조대신으로 창립했는지, 울릉도엔 독도와 가까운 이즈모섬의 시조이자 소잔오존의 6대손인 대국주명과 사대주명을 세워 강릉의 천조대신과 함께 창립했는지를 규슈 후쿠오카 신사와 야츠시로 신사, 혼슈 오사카 신사 등의 신라와의 연관성과 유적 등을 비교분석하면 명확하게 왜 매국식민사학이 조선총독부와 함께 그토록 태종 이사부를 은폐, 왜곡, 말살하려 했는지 명쾌하게 알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역사적 근거를 존중한다면 부산 태종대는 태종무열왕이 순행하다 활을 쐈다는 유래보다 앞섰으며 민족의 자긍심을 가진 태종 이사부장군의 3번에 걸친 주필지로서의 태종대 원유래를 널리 알려야 하며, 강릉의 우산국(울릉도와 독도) 출항지인 강문천의 원류인 옛남대천을 매립(일본인군수 농택성)하여 경포호 군선 주필지와, 강문 신라토성의 지휘소, 초당동 주둔지로 이어져 대성황사 이사부지신까지 산재된 이사부장군의 세계적인 승전지를 복원해야만 역사에 죄를 짓지 않습니다.
"역사는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표적!"
<나는 자랑스러운 "이사부국"의 1호 국민>
악법은 법망에 의해 한국이란 나라에 갇혀있지만, 정법은 자유로운 이사부국에 속해 있으니 나는 자유! 내가 모시는 국가 수반은 가이샤와 같은 세금 수탈의 종족이 아닌 20대에 동해를 평정한 후 평생을 세 번에 걸쳐 왜 본토를 타멸시킨 대장군.
이사부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 또한 반도사관에 세뇌되어 식민의 백성임을 대를 이어 맹서하는 자이니 그 2세들이다. 이사부국의 국민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니 바른 역사관을 가지면 되고, 국민 중 전사의 길을 걷는 자가 있다면, 풍후의 '奇門遁甲'으로 진법을 익히고, 태공망 여상의 '六韜'에 나타난 오음소리로 궁상각치우의 기만술을 응용하면 될 것이다. 그것이 12琴의 律呂.
이사부국으로 가는 길은 한반도, 만주 내 1,141곳의 신사에 단죄문을 세우고, 이사부에 대한 역사왜곡에 대해 진상조사를 하는 것 만큼이나 험로하지만 苦盡甘來란 뜻을 세우고, 쟁취하는 자에게 선물하는 성과 아니던가!
이처럼 이사부국의 적국은 나라가 아닌 부정하게 정권을 편취하는 반민족행위자니 密偵과 順倭는 그에 빌붙은 奸臣亂賊이다!
#이사부 독립선언!
"<단죄일기>의 고정 기록을 넘지않는 이사부 학설은 모두 순왜들의 역사왜곡이자 매국행위임을 선언합니다!"(2022.7.1)
<1885년 ⌜高宗實錄⌟에 기록된 活貧黨과 1948년 ‘反民族行爲處罰法’에 근거한 한반도 順倭들의 진화>
AD512년 신라 이사부가 何瑟羅(강릉) 군주로 우산국(울릉도,독도)을 정벌한 것이 해상의 反民族行爲者(海賊)에 대한 대표적인 斷罪라 한다면, 역사상 반민족행위자를 漢奸, 여시, 密偵 등으로 지칭할 때, 이를 통칭하여 順倭라 하고 賣國奴라 부른다. 이들은 朝鮮總督府에 충성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암약했다.
이에 대항하여 태동된 것이 여러 민간무장조직 중 活貧黨(義兵, 獨立軍으로 변모)을 들 수 있는데, 수십명일 경우 화승총과 刀槍 등을 소지했으나 700~800명의 조직화가 된 후에는 六穴砲와 海上 조직까지 구축해 反民族行爲者를 斷罪했다.
[이사부 백서 집필 이유] "내 생의 마지막 사즉생 저항
1.이사부 역사왜곡 진상조사!
2.한반도,만주 신사 1,140곳 단죄!"
고대병법에서 풍후의 <기문둔갑>과 <천부경> 81자, 강태공의 <육도>와 <징심록> 제1장 [부도지]에 나타난 6금의 율려와 오음소리, 중국 <산해경>증곡산 박과 일본 <신서고악도> 신라 박이 태종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과 3번에 걸친 왜 본토 정벌에 응용된 이유?
먼저 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조선총독부와 일 우익이 일제강점기 심혈을 기울인 "반도사관"에 의한 <조선사> 편찬의도와 한반도, 만주에 뿌리채 이식시키려는 "내선일체 일선동조론"에 의한 신사 1,141곳을 간파하고 맞춤형 제신들을 비교 분석해야 하지만 현재 우리 현실은 이 땅에 기생하는 순왜들과 식민사학에 의해 제대로 된 연구가 없이 단편적인 용역 결과에 따른 논문 뿐으로 신사가 이 땅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탐구한 것이 없다.
특히 제신들과 수탈의 도구인 봉납대, 세심석의 용도와 함께 주요 신사 입구에 세운 고마이누와 사자개의 존재를 명확히 밝힌 연구서가 없어 우리는 왜? 1910년 강제병합 이후 친일매국노 주도의 영구식민지 프로젝트에 대해 지금까지 겉만 아는 형편이다.
그것이 필자로 하여금 14년을 연구한 이사부의 전쟁사와 생애에 대해 2,000page에 달하는 방대한 결과물을 망라한 "가칭, 이사부 백서"를 집필하게 한 동력이 된 것이며, 이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영웅에 대한 후예로써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한다.
#인생은 이사부처럼!
10대 '충년'에 마복자로 풍월주의 지존이 되어,
20대 '약관'에 AD512년 동해안과 우산국을 평정하고,
30대 '이립'에 AD527년 법흥왕과 불교 국교 정립
40대 '불혹'에 AD529년 대마도와 규슈 후쿠오카 4촌 초략
50대 '지천명'엔 AD538년 혼슈 가와치 명석포 정벌
60대 '이순'엔 AD550년 단양 적성과 AD556년 북한산까지 한강 일원 평정
70대 '희수'엔 AD562년 규슈 야츠시로 센단마치의 임나10국 타멸
아아~'미수'엔 사망하시어 AD572년10월 20일 팔관회가 열렸도다!
#일 극우가 독도 일본땅 억지를 부리는 요소 중 하나가 독도와 이사부를 분리해 무주지(주인없는 섬)로 만들어 일 어부들의 강치 노략질을 실효적 어획활동
으로 만든 다음 울릉도에 울도신사를 세워 욱일승천기의 원형인 강릉신사의 천조대신과 함께 독도와 가까운 이즈모섬의 시조인 대국주명과 6대 손인 사대주명을 맞춤형 제신으로 창립함으로써 창세기부터 일본 땅으로 왜곡시키는 것이었기에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독도, 이사부를 분리시키는 행태에 단
호하게 거부의사를 표명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이사부장군께서는 2010년 "이사부크루즈"로 여수에, 2016년 "한국해양과학탐사선 이사부"로 부산항에서 대한민국과 세계를 항해하고 있으며, 2010년 양양 동해왕이사부선양연구소, 2014년 강릉 경포대신라토성전시관, 2018년 도서출판 이사부, 2019년 강릉 신라이사부독도참치 상호로 선양을 하며, 2022년 이사부독도빵, 이사부왕가리비 등 다수의 네이밍 저작권을 등록하고 있습니다.
#17대 내물왕의 4세 손이자 21대 소지왕의 마복자로 동생 아진공과 보옥공주의 아들로 월성에서 태어난 태종 이사부의 사상적 계보는 스승 백결선생이 전수한 충신 박제상의 <징심록>과 거문고의 6금의
율려 및 금척 그리고 가야의 악성 우륵이 창안한 가야금의 12금의 율려이며 이는 풍월도로 집약되어 딸 숙명궁주의 아들인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로 집대성되
화랑의 근간이 되었으며 신라 궁중음악의 시원이 되었다.
#이사부의 3번에 걸친 정벌지역엔 공통적으로 그 흔적이 전래되는데 바로 지명의 음차, 훈차와 함께 규슈 후쿠오카, 야츠시로, 혼슈 가와치 인근 신사의 유래, 유적으로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면 얼마나 한.일의 순왜들이 이사부장군의 위업을 은폐, 말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매도했는지 규명할 수 있다.
#태종 이사부를 배제한 동해안의 고대사는 조선총독
부에 빌붙은 순왜들의 영혼없는 역사왜곡 조선총독부에 빌붙은 순왜들의 영혼없는 역사왜곡!
#"AD572년 10월20일 신라 <팔관회>는 이사부장군 추도 위령제로 반드시 복원해야 합니다!"
>신라 <팔관회>는 전몰장병을 위한 위령제로 AD551년 거칠부가 고구려의 10군을 공취하고 승려 혜량을 모시고 돌아오자 진흥왕이 승통으로 삼으며
시작되었는데 이는 중국의 팔관회가 위령제로 설행되고 있어 그 괘를 같이한다.
이는 신라의 팔관회 설행 의식이 화랑도가 중심주체가 되어 진행되었으며 화랑집단에는 낭도 승려가 한
명씩 속해 있어 의례를 이끌었는데, 의례설행 시에
는 무대를 설치하고, 화랑 및 낭도들로 조직된 4부의 악대인 '사선악부'와, '용과 봉황', '코끼리와 말'의 형상을 싣고 있는 배 모양의 수레들인 "용봉상마거선"을 동원하여 화려한 백희와 가무를 공연하였다.
이처럼 신라의 <팔관회>는 전쟁 후에도 국선화랑들에 의해 출정가, 사선무 형태로 발전되는데, 신라 효소왕 시기 동해안에서 영랑과 술랑, 남상과 안상의
국선화랑들이 남긴 지명과 흔적(금강산 무선대, 사선무/고성, 양양의 사자놀이/속초 영랑과 보덕의 거문고와 피리/강릉 단오 사자가면무와 창우배, 한송정의 사선정과 군선강에서의 출정무 등)은 AD512년 이사부장군의 우산국 정벌 시 출정무와 사자가면무의 영향을 받아 신라 궁중음악의 시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팔관회는 고구려의 10월 제천의식인 동맹의 유풍이 계승되고, 고려에도 팔관회의 전통이 이어져 남북 민족음악의 큰 획을 그었으나 조선에서 유교적
잣대로 중단, 그 맥이 끊기게 된다.
(*순왜들의 종교적 편향성 매도를 배제하기 위해 불
교의례에 관한 규범과 범패 등 악무는 배제합니다.)
#<단죄 일기>의 목표는 신 식민통치의 속살을 규명하고, 이사부 말살에 대한 진상조사와 한반도, 만주 1,140곳의 단죄문 설치로 역사왜곡 척결과 민족정기 복원을 도모하는 데 있으며 이 집필작업은 2022. 10.25 독도의 날을 기한으로 하며 상황에 따라 유연
하게 대처합니다.{+도서출판 이사부+동해왕이사
부선양연구소 지원}
#하슬라(강릉)군주 이사부가 AD512년 우산국을 복속시킨 기만술은 나무토막 사자가 아닌 나무가면 복식으로 북청사자와 함께 남북의 정기를 상징하는 신
라 박으로 일제 신사 앞을 지키던 고마이누와 사자상은 남북의 토종견을 멸종시킨 후 일본 제신을 지키는 개로 왜곡시킨 것으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한국인과 함께 일본은 사죄&철거를 즉각 시행하라!
#"임나일본부"는 이사부 정벌기간 은폐위한 역사조
작으로 특히 AD562년 이사부 규슈 임나10국 멸망은 <일본서기>에 기록된 정사로 순왜들은 규슈(부속
도서 대마도)의 신라땅 반환을 막기위해 지금도 한반도 남부를 옮겨다니며 유네스코 등재 등 이권에
개입 조작을 이어가고 있다!
#태종 이사부 탄생지
>경주 월성(내물왕의 4세손, 소지왕의 마복자,
*가계: 부(아진공), 모(보옥공주), 부인(지소태후), 아
들(세종), 딸(숙명궁주:아들 원광법사), 며느리(미실:
손녀 영모(김유신 정실부인)), 진흥왕의 계부이자 최측근(거칠부, 김무력~사다함), 스승 백결선생.
#태종 이사부 일본정벌 3회 주필지
>부산 태종대(옛 절영도)
#이사부 독도 복속 전시장
>강릉 경포대신라토성전시관
(국가연표 : 하슬라군주 이사부AD512년 우산국 복속!)
#이사부 유일한 비문기록
>국보 제198호 단양신라적성비
#정토 <이사부 백서>는 2,000page의 이사부연구총
서 10권을 합본하는 작업으로 이사부 연구14년을 결산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순왜에 대한 저항의 가치를 담론으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Since12 동해왕이사부선양연구소[양양 소재] (8/14 현재 2,296page 작업 중으로 2022.10.25. 독
도의 날 완결 목표)
#고대사를 외면하는 국가는 신생국가
고대사를 왜곡하는 국가는 망조국가
#대한민국 국혼회복은
순왜척결과 민족정기 복원과 함께
이사부 장군 진상조사와
한반도,만주 신사 1,140곳 단죄부터!
#태종 이사부 장군 주요 기념주년!
태종 이사부 공 탄신 1,538주년!
태종 이사부 군주 독도복속 1,510주년!
태종 이사부 상신 규슈 후쿠오카 4촌 초략
1,493주년!
태종 이사부 도독 혼슈 가와치 정벌 1,484주년!
태종 이사부 병부령 규슈,대마도 멸망 1460주년!
태종 이사부 국상 사망 팔관회 1,450주년!
~~~~~~~~~~end
분리해 무주지(주인없는 섬)로 만들어 일 어부들의 강치 노략질을 실효적 어획활동
으로 만든 다음 울릉도에 울도신사를 세워 욱일승천기의 원형인 강릉신사의 천조대신과 함께 독도와 가까운 이즈모섬의 시조인 대국주명과 6대 손인 사대주명을 맞춤형 제신으로 창립함으로써 창세기부터 일본 땅으로 왜곡시키는 것이었기에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독도, 이사부를 분리시키는 행태에 단
호하게 거부의사를 표명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이사부장군께서는 2010년 "이사부크루즈"로 여수에, 2016년 "한국해양과학탐사선 이사부"로 부산항에서 대한민국과 세계를 항해하고 있으며, 2010년 양양 동해왕이사부선양연구소, 2014년 강릉 경포대신라토성전시관, 2018년 도서출판 이사부, 2019년 강릉 신라이사부독도참치 상호로 선양을 하며, 2022년 이사부독도빵, 이사부왕가리비 등 다수의 네이밍 저작권을 등록하고 있습니다.
#17대 내물왕의 4세 손이자 21대 소지왕의 마복자로 동생 아진공과 보옥공주의 아들로 월성에서 태어난 태종 이사부의 사상적 계보는 스승 백결선생이 전수한 충신 박제상의 <징심록>과 거문고의 6금의
율려 및 금척 그리고 가야의 악성 우륵이 창안한 가야금의 12금의 율려이며 이는 풍월도로 집약되어 딸 숙명궁주의 아들인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로 집대성되
화랑의 근간이 되었으며 신라 궁중음악의 시원이 되었다.
#이사부의 3번에 걸친 정벌지역엔 공통적으로 그 흔적이 전래되는데 바로 지명의 음차, 훈차와 함께 규슈 후쿠오카, 야츠시로, 혼슈 가와치 인근 신사의 유래, 유적으로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면 얼마나 한.일의 순왜들이 이사부장군의 위업을 은폐, 말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매도했는지 규명할 수 있다.
#태종 이사부를 배제한 동해안의 고대사는 조선총독
부에 빌붙은 순왜들의 영혼없는 역사왜곡 조선총독부에 빌붙은 순왜들의 영혼없는 역사왜곡!
#"AD572년 10월20일 신라 <팔관회>는 이사부장군 추도 위령제로 반드시 복원해야 합니다!"
>신라 <팔관회>는 전몰장병을 위한 위령제로 AD551년 거칠부가 고구려의 10군을 공취하고 승려 혜량을 모시고 돌아오자 진흥왕이 승통으로 삼으며
시작되었는데 이는 중국의 팔관회가 위령제로 설행되고 있어 그 괘를 같이한다.
이는 신라의 팔관회 설행 의식이 화랑도가 중심주체가 되어 진행되었으며 화랑집단에는 낭도 승려가 한
명씩 속해 있어 의례를 이끌었는데, 의례설행 시에
는 무대를 설치하고, 화랑 및 낭도들로 조직된 4부의 악대인 '사선악부'와, '용과 봉황', '코끼리와 말'의 형상을 싣고 있는 배 모양의 수레들인 "용봉상마거선"을 동원하여 화려한 백희와 가무를 공연하였다.
이처럼 신라의 <팔관회>는 전쟁 후에도 국선화랑들에 의해 출정가, 사선무 형태로 발전되는데, 신라 효소왕 시기 동해안에서 영랑과 술랑, 남상과 안상의
국선화랑들이 남긴 지명과 흔적(금강산 무선대, 사선무/고성, 양양의 사자놀이/속초 영랑과 보덕의 거문고와 피리/강릉 단오 사자가면무와 창우배, 한송정의 사선정과 군선강에서의 출정무 등)은 AD512년 이사부장군의 우산국 정벌 시 출정무와 사자가면무의 영향을 받아 신라 궁중음악의 시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팔관회는 고구려의 10월 제천의식인 동맹의 유풍이 계승되고, 고려에도 팔관회의 전통이 이어져 남북 민족음악의 큰 획을 그었으나 조선에서 유교적
잣대로 중단, 그 맥이 끊기게 된다.
(*순왜들의 종교적 편향성 매도를 배제하기 위해 불
교의례에 관한 규범과 범패 등 악무는 배제합니다.)
#<단죄 일기>의 목표는 신 식민통치의 속살을 규명하고, 이사부 말살에 대한 진상조사와 한반도, 만주 1,140곳의 단죄문 설치로 역사왜곡 척결과 민족정기 복원을 도모하는 데 있으며 이 집필작업은 2022. 10.25 독도의 날을 기한으로 하며 상황에 따라 유연
하게 대처합니다.{+도서출판 이사부+동해왕이사
부선양연구소 지원}
#하슬라(강릉)군주 이사부가 AD512년 우산국을 복속시킨 기만술은 나무토막 사자가 아닌 나무가면 복식으로 북청사자와 함께 남북의 정기를 상징하는 신
라 박으로 일제 신사 앞을 지키던 고마이누와 사자상은 남북의 토종견을 멸종시킨 후 일본 제신을 지키는 개로 왜곡시킨 것으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한국인과 함께 일본은 사죄&철거를 즉각 시행하라!
#"임나일본부"는 이사부 정벌기간 은폐위한 역사조
작으로 특히 AD562년 이사부 규슈 임나10국 멸망은 <일본서기>에 기록된 정사로 순왜들은 규슈(부속
도서 대마도)의 신라땅 반환을 막기위해 지금도 한반도 남부를 옮겨다니며 유네스코 등재 등 이권에
개입 조작을 이어가고 있다!
#태종 이사부 탄생지
>경주 월성(내물왕의 4세손, 소지왕의 마복자,
*가계: 부(아진공), 모(보옥공주), 부인(지소태후), 아
들(세종), 딸(숙명궁주:아들 원광법사), 며느리(미실:
손녀 영모(김유신 정실부인)), 진흥왕의 계부이자 최측근(거칠부, 김무력~사다함), 스승 백결선생.
#태종 이사부 일본정벌 3회 주필지
>부산 태종대(옛 절영도)
#이사부 독도 복속 전시장
>강릉 경포대신라토성전시관
(국가연표 : 하슬라군주 이사부AD512년 우산국 복속!)
#이사부 유일한 비문기록
>국보 제198호 단양신라적성비
#정토 <이사부 백서>는 2,000page의 이사부연구총
서 10권을 합본하는 작업으로 이사부 연구14년을 결산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순왜에 대한 저항의 가치를 담론으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Since12 동해왕이사부선양연구소[양양 소재] (8/14 현재 2,296page 작업 중으로 2022.10.25. 독
도의 날 완결 목표)
#고대사를 외면하는 국가는 신생국가
고대사를 왜곡하는 국가는 망조국가
#대한민국 국혼회복은
순왜척결과 민족정기 복원과 함께
이사부 장군 진상조사와
한반도,만주 신사 1,140곳 단죄부터!
#태종 이사부 장군 주요 기념주년!
태종 이사부 공 탄신 1,538주년!
태종 이사부 군주 독도복속 1,510주년!
태종 이사부 상신 규슈 후쿠오카 4촌 초략
1,493주년!
태종 이사부 도독 혼슈 가와치 정벌 1,484주년!
태종 이사부 병부령 규슈,대마도 멸망 1460주년!
태종 이사부 국상 사망 팔관회 1,4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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