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노동관계로 노동자들이 더욱 소외되고 있다.
예전에는 업체가 공고를 내면 취업 준비자가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입사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최근 직업소개와 파견, 도급 등의 명칭으로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노동관계에 제3자가 개입하고 있다.
정부가 사용자 책임을 회피 할 수 있도록 노동관계를 간접화, 중층화, 혼탁화 시켜 노동관계에 소위 용역업체가 개입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정책으로 최근 현대자동차 울산 및 아산 등의 공장 사내하청노조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공장점거파업을 벌인지 17일을 넘고 있고, 대전 롯데백화점 시설 파견 노동자들도 십수일째 노숙 농성 중에 있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근로관계, 원래 복잡했나
1961년 직업안정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유로직업소개업과 위탁모집시 응모자에 대한 수수료도 각각 금지였다.
1967년 직업안정법이 개정되면서 유료직업소개업이 허가제로 변경됐고, 1997년에는 파견법이 제정돼 근로자 공급(파견)이 허가됐다.
1999년 직업안정법이 또 개정되면서 유료직업소개업이 등록제로 됐고 소재 직종 수, 가능 직종, 소개지역 제한이 폐지됐다.
10년만인 2009년에 또 다시 직업안정법이 개정되면서 ▲직업소개와 모집구분 폐지 ▲직업상담원 채용요건 완화 ▲운영원칙위반 벌칙→과태료 완화 ▲고급전문인력 구인수수료 상한제한 폐지 ▲구인자 의뢰 모집시 응모자에 대한 금품수수 허용 등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정부는 올해 9월 15일 직업안정법 후신인 ‘고용서비스활성화법’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직업안정법의 전면개정안을 입법예고 했고 올 연말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의 주요 골자는 직업안정이란 법 목적을 지우고 고용서비스의 활성화와 시장화를 위해 민간부문을 정부와 동등한 주체로 격상시켰다.
또 직업소개, 직업훈련, 파견 등을 모두 수행할 복합고용서비스업을 도입했다.
아울러 민간중개업체가 수익을 내도록 구인자 수수료 상한을 폐지했으며 공공 고용서비스 분야를 대거 민간위탁으로 전환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 처럼 1997년 파견법 이후 일련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노동관계가 복잡해지면서 기업 외부에서 노동력을 공급하는 파견업체도 1998년 789개에서 1년만에 1244개로 폭증했다.
파견근로자 규모도 2000년 4만 1545명에서 2003년 5만 3369명, 2006년 6만 6315명, 2009년 8만 3775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무엇이 문제인가
파견법 제정으로 사용자는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도 파견업자에게 노동자를 공급해달라고 요구하면 쉽게 노동자를 쓸 수 있다.
인력파견업자는 사용자 대신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사용자에게 노동자를 공급해주는 대가로 돈을 번다.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도(사용자의 책임부담 없이) 직접 업무 지시할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파견’의 단맛을 본 사용자들은 파견허용업무 만이 아니라 다른 업무도 이렇게 사용하고픈 달콤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에 사용자는 노동자를 공급받는 대신 자신의 업무를 인력중개업체에 위탁하고 인력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을 사실상 사용하는 효과를 얻는 도급(사내 하도급·아웃소싱) 등을 이용하면서 사용자는 노동관계에 책임을 쉽게 회피하게 됐다.
사용자는 파견대상 업무 뿐만 아니라 관련업무도 파견처럼 사용자 책임 부담없이 노동자를 사용하기 위해 하도급 계약을 맺어 노동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에 간접고용으로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이 더욱 열악해 지는 피해를 입게 된다.
정부는 하도급으로 인해 침해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위법한 도급을 합법적인 파견으로 관리하도록 파견허용업무 범위를 점차 확대했다.
결국 합법파견 영역(파견허용업무)이 불법파견(위장도급)을 유인하고 불법파견은 다시 합법파견을 확대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정부는 간접고용을 점점 더 확대하는 모순된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정규직, 마지막 세대되나
노동계는 ‘고용서비스활성화법안’이 당정 정규직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이지만, 골자인 민간 노동력중개산업의 활성화는 사업장 밖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로만 위장하고 있을 뿐 근본적인 뿌리는 노동유연화 전략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민간 노동력중개산업을 시장화하려면 사업장내 내부 노동시장을 먼저 유연화해야 하기 때문에 화살은 먼저 사업장 내부에서 진행하는 임금과 노동시간, 고용 전반의 유연화에 집중될 것으로 노동계는 전망하고 있다.
또 고용서비스활성화법안이 통과될 경우, 사용기업이 조종하는 복합고용서비스업을 통해 정규직 일자리의 상당부분이 분사·외주화 되고, 또 대기발령과 전직, 교육훈련프로그램을 이용해 상시로 이뤄지는 구조조정 전략은 복합고용서비스업의 치밀한 컨설팅과 관리하에서 더욱 체계적·집단적으로 진행될 우려가 있다고 노동계는 진단하고 있다.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관계자는 “민간 노동력중개산업의 시장화는 노동유연화의 완결판으로, 사용기업으로부터 완전히 외부화된 고용시장을 의미한다”며 “결국 민간 고용서비스활성화 전략은 노동시장의 외부화 전략과 무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는 궁극적으로 ‘사업장 내부의 노동유연화’로 향해져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 10월 12일 그동안의 고용서비스선진화 정책을 아우르는 장기적인 고용정책인 ‘2020 국가고용전략’을 발표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 전략에는 유연근무제, 탄력적 근로시간제, 성과주의 임금체계 및 임금피크제, 전직 프로그램의 조직적 가동 등을 내세우며 내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촉진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렇게 유연화된 일자리는 곧 민간 인력중개산업을 통해 유연화된 외부 노동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파견대상업종 확대, 기간제 사용기간제한 예외확대, 초단시간·호출노동의 확대 등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