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섭
민주노총 대전본부장
다가오는 7월 1일이면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관련 법이 수많은 논란 끝에 ‘근로시간면제제도’(이하 타임오프)를 통해 시행된다. 그러나 그 내용이 노조활동을 심각히 위축시킬 것으로 예상되면서 금속노조의 경고파업에 이어 민주노총의 파업이 예고됐다.
따라서 법시행을 며칠 앞두고 있지만 논란은 사업장까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지난 10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근로시간면제제도의 내용과 기업의 대응방안 설명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전운배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은 “말하기 매우 조심스럽다”는 전제를 깔면서 “타임오프의 핵심은 현장경영권이 관리자에게 넘어가게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회사가 이 제도를 관리 안하면 도루묵이 된다”며 “정부가 다 관리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타임오프제도’는 노조의 힘을 약화시켜 ‘회사의 현장통제’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제도임을 노동부 고위간부 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현장통제’의 강화는 노동강도의 강화, 비정규직 증가와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을 쉽게 하는 결과를 낳아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피폐화시킬 것이 자명하다.
정부와 경영계는 ‘국제기준’을 앞세우며 전임자의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법으로 전임자임금 지급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물론 많은 나라가 노조 전임자 임금에 대해 노조가 지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노동계가 전임자 임금문제에 대해 ‘노사자율’과 사용자에게 부담할 것으로 요구하는 것은 나름의 중요한 근거들이 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해방 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이나 대한노총(한국노총의 전신)은 산업별노조와 직업별노조로 구성돼 있었다. 따라서 노조의 교섭이나 활동이 산업별노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실제 국제적 흐름으로 봐도 일본 등 몇 몇 나라를 제외하면 노조라하면 산업별노조를 칭하며 우리나라처럼 기업별노조는 황색노조라 해서 어용노조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전평은 미군정과 이승만정부에 의해 탄압에 의해 소멸됐고 대한노총은 이승만의 꼭두각시가 돼 오히려 전평을 탄압하는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이후 ‘자주적 노동운동’의 흐름은 1987년에 와서야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독재 치하에서 산업별노조는 강제로 기업별노조로 재편됐다. 따라서 기업별노조에서 독자적으로 노조 전임자를 두기에는 실제로 불가능했고 어용화된 노조의 노무관리 차원에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을 회사에서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87년 6월항쟁 이후 발생한 노동자대투쟁은 이후 민주노조운동으로 이어지며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이 만들어 졌다. 또한 기업별노조를 산업별노조로 재편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돼 왔으나 경영계가 산업별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관련 노동법도 정비되지 않아 산업별교섭이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별노조의 발달도 더디게 되며 정부와 자본이 요구하는 데로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을 노조가 지급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따라서 노조에게 국제기준을 요구하기 이전에 노동조합에 대한 경영계의 태도 또한 국제적 기준에 맞게 바뀌는 것이 우선일 것이며 산업별노조의 산업별교섭이 정착될 수 있도록 노조법을 개정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현재의 타임오프제가 일부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동운동의 주요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대규모 노조의 활동을 원천적으로 제약하며 결과적으로 노사갈등을 더욱 유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산업별교섭을 안착시킬 수 있는 법규 정비와 노조의 물적토대가 정비될 때까지는 사용자에 의한 노조전임자 임금을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한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는 법으로 강제한 사항이 아니라 노사자율에 맡길 사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