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던 지난 20일 낮 대전 인근의 어느 마을.
내리쬐는 햇볕을 뚫고 산골 마을에 다다르니 빈집들이 즐비한 동네 맨 위쪽 허름한 집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만 4년차 투쟁을 전개하며 현장으로 돌아가고픈 금속노조 콜텍지회 노동자 십여 명이 기자일행을 반갑게 맞아줬다.
이들은 평생 창문 하나 없는 공장에서, 먼지 가득한 작업 공간에서 일하며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인 ‘콜트(Cort)’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부자 기업의 느닷없는 직장페쇄
㈜콜트악기는 인천의 콜트, 대전의 콜텍, 인도네시아, 중국 등 6개의 법인을 소유하고 있으며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거대한 기타 제조업체이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누적흑자만 878억 원을 벌어들인 부자 기업이다.
충남 계룡시에 공장이 있는 콜텍은 지난 2007년 4월 회사측이 직장폐쇄를 단행, 노동자들을 순식간에 거리로 내몰았다.
이 같은 부자기업이 갑자기 직장폐쇄를 단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콜텍은 2007년 3월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 56명을 해고했다.
2006년 적자가 발생했다며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지만 그것은 허울일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가 더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고를 놓고 노동조합이 문제 제기에 나서자 사측은 한 달 후 국내 공장을 모두 폐업시킨 것이다.
이에 콜트, 콜텍 노동자들은 현재까지 거리농성과 분신, 송전탑 고공투쟁, 단식투쟁, 해외 원정투쟁 등 죽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을 다 해봤다.
거리농성·단식
··· 해외원정 투쟁도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노조 와해공작과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 뿐이었다.
김경봉 콜텍지회 조직부장은 “법률적으로 콜트악기는 부당한 폐업, 정리해고 등이 확인되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법제도를 무시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만 반복하고 있다”며 “반드시 승리해서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측은 여러 차례 법원의 판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있다.
부당해고 판정을 놓고 인천지방노동위원회나 중앙노동위원회의 잇따른 판정을 무시하는가하면 서울고등법원이 ‘회사의 행위에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다’며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더구나 전국의 언론들이 콜텍 문제를 심층보도하고 사설까지 할애하며 대대적으로 다뤘지만 사측은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끝까지 법정소송을 계속해 보겠다는 오기를 발동하고 있다.
서울고법 “부당해고” 판결
이인근 콜텍지회 지회장은 “20여년 동안 좋은 기타를 만들기 위해 창문없는 작업장에서 일했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와 직장폐쇄”라며 “사측은 불법적인 폐업과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공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쟁이 길어지자 당장 먹고사는 생계문제가 조합원들에게 가장 힘든 시련으로 다가왔다.
현재까지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26명.
이들의 평균 나이는 47세이다.
26명 장류 팔아가며 생계 이어
대부분 자녀들 교육에 돈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직장폐쇄를 당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산골마을에도 이들이 모여 있는 이유도 생계를 위해서이다.
이들은 ‘산들바람’이라는 장류 업체를 만들고 전국에 발품을 팔며 생계를 이어 오고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계약이 끝났고 최근에는 실업급여 조차 끊어졌다.
이 곳도 한 동료의 친구가 빈 집을 내줘 겨우 근거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김 부장은 “지회장과 사무국장, 총무는 계룡시 사업장 앞에서 컨테이너 생활을 수년째 하고 있다”며 “그나마 우리가 나은 편”이라고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콜텍과 콜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2009년 3월 독일국제악기쇼를 비롯해 같은 해 10월 일본국제악기쇼, 올 1월 미국국제악기쇼, 3월 미국철강노조초청 연대 투쟁을 비롯해 오는 27일 일본 후지락페스티벌에도 참가해 원정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이에 국내 문화예술인들도 속속 결합수위를 높이고 있다.
매주 수요일 서울 신촌의 한 소극장에서 콜텍지지를 위한 공연이 진행되고 있고 해외 유명 뮤지션들도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문화인들의 연대 목적은 메이저 원청사인 팬더(Fender)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최근 팬더측에서 콜텍의 노동탄압을 자체 조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투쟁의 결과가 결실을 맺을 지 이번 달 또는 다음 달이 콜텍, 콜트 노동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내달께 대법원 판결 초미관심
이 기간 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원직복직과 그동안의 임금을 받을 수 있을 지를 판단하는 분수령이다.
2007년 4월 공장폐쇄, 5월 전체직원에 대해 정리해고 통보, 일방적 휴업 후 7월 전 직원에 대한 정리해고와 직장폐쇄를 당한지 만 4년만에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엄연섭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장은 “정부와 국회, 사법부 등은 이들의 문제를 노사간의 문제만으로 제한하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의 권리가 존중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대법원 판결을 보고 투쟁 조직과 수위를 재결정 하겠다”고 강조했다.
